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몸의 어딘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당장 오늘부터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 당장, 바로, 지금 시작하면 될 텐데 운동복도 필요하고, 무릎과 발목을 제대로 보호해 줄 운동화도 필요하다며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알아보다가 지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하루에 만보 이상은 걸어야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는 동거인의 말에 달이 바뀌는 첫날 아침 집을 나섰다. 전날 밤에는 어느 동선으로 걸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으로 정했다. 공원은 두 개의 자치구와 세 개의 동에 걸쳐 길게 조성되어 있다. 주민들은 이 공원을 ‘숲길’이라고 부른다. 길게 뻗을 수 있는 건 공원과 차도가 만나는 지점이 신호등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길고 긴 공원이다.

나는 하나의 구, 두 개의 동 정도의 범위를 아침마다 걷는다. 기준점을 정해놓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서너 바퀴를 걸으면 똑똑한 손목시계가 어느 정도 걸었는지 알려준다. 며칠 동안 비슷한 시간에 걸어보니 자주 마치는 얼굴과 강아지들, 고양이가 있다. 그들도 나처럼 빙글빙글 돈다. (고양이만 비슷한 위치, 비슷한 자세로 앉아있다.) 할머니의 사랑을 간식으로 듬뿍 받은 것 같은 하얀 털 강아지는 분홍색 조끼와 하늘색 티셔츠를 번갈아 입고 나타난다. 앞에 한 번 보고, 할머니 다리 한 번 보기를 반복. 어째 할머니랑 걸음걸이도 비슷해 보인다. 서로에게 든든한 짝꿍 같다. 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 나타나 어딘가로 간다. 러닝 프로그램에 맞춰 뛰는 것 같은 어떤 사람은 경사진 구간에서도 가볍게 오른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나는 그 가뿐한 뜀박질에 희열을 느낀다. 언덕 구간의 정상(?)에 도달하면 각종 운동기구가 모여 있는 구역이 나온다. 아마도 이 숲길에서 가장 분주한 곳일 테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조건 중 하나는 아침 - 원하는 시간에 -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른이라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누군가는 라디오 뉴스다. 뉴스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집 밖으로 뛰쳐나오면 하루 분량의 학습지를 끝내 홀가분한 눈높이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유치하지만, 보상받고 싶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런 심리가 생긴다. 메리 올리버의 아침은 넓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과 함께라 했는데 나의 아침은 고상한 헛소리로 채워져 있는 뉴스와 공사 현장의 소음, 경적이 넘실대는 도로 위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좀 유치하고, 나이만 꼬박꼬박 먹었지 눈높이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걷기 시작한 건 현상 유지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현상 유지를 위해 처음에는 뛰었다. 많이들 뛰고, 뛰면서 얻는 기쁨이 크다길래 느껴보고 싶었다. 공원과 반대쪽인 한강변을 따라 뛰었고, 돌아온 건 두드러기였다. 심부체온이 상승하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피부 교감신경계에 오작동이 발생하면 온 몸에 두드러기로 반응하는데 오작동했다. 온몸이 붉은 반점으로 뒤덮이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 말짱하던 정신도 스스로 탈출한다. 다행히 두드러기는 자연스럽게 사그라드는데 가장 큰 부작용은 생활에 제약이 생긴다는 것. 몸의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피하게 되고, 매운 음식, 뜨거운 음식 금지, 몸의 온도가 극심하게 올라가는 술도 금지. 피부과에서는 양약을 처방해주고, 한의원에서는 각종 침술로 체질 개선을 도와준다. 모든 게 미덥지 않아서 걷기 시작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 두드러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 바퀴 반쯤 걸을 땐 당황스럽다. 간지러운 상태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세 바퀴가 넘어가면 잠잠해진다. 역술가가 버티는 삶을 살라고 했는데 이거였나, 이걸 버티라고 한 건가 싶어서 눈물이 난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이후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질병은 결핵, 암, 에이즈다. 작가는 이런 종류의 병은 환자의 생활 방식을 비난하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점에서 질병에 달리는 불쾌한 은유를 비판한다. 두드러기가 처음 등장하고, 간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 놀란 건 몸의 변화에 느낀 첫 감정이 두려움이 아닌 혐오감이었다는 거다. 받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성가신 선물을 이미 받았으니 선물을 세세하게 뜯어보고 알아보는 게 일이 되었다. 첫 감정, 내 몸을 혐오하는 시기는 잘 넘겼고, 매일 라디오 뉴스에 도움을 받으며 일어나 잘 걷는 일만 남았다. 대부분의 질병이 그렇겠지만, 이유를 찾는 출발점은 내 몸이다. 자신을 방치해서 생겼다고 하면 억울하고, 나름 열심히 살다가 생겼다고 하면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