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수레처럼 덜컹거리는

하얀 쥐의 해, 경자년이 갔다. 소망과 희망 사이에서 시작한 해가 졌다.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해는 어딘가 모르게 행운이 따를 것 같았던 미신은 거품이었고,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어김없이 빨라졌다. 불안의 한 가운데서 잘 버텼다. 앞꿈치를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파도가 겁만 주고 떠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힘내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주고받고 진짜 힘을 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먼발치에 있었다. 지나간 해를 복기하는 것만큼 복잡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작년은 참 단출했다. 1월과 2월은 대체로 희망 속에 살았고, 3월부터 솟아난 불안의 싹은 4월과 5월, 6월에 질긴 잡초로 자랐다. 미리 잡혔던 약속들이 하나씩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겁만 주던 파도가 이미 덮쳤음을 인정했다.

그래, 또 한 해가 갔다. 가는 걸 또 봤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보다 바뀌는 숫자들에 집착한다. 지금이 몇 년도인지, 내 나이는 어떻게 바뀌는지, 새해 타로 카드의 테마는 몇 번인지, 세금은 얼마나 오르는지, 통장 잔고는 안전한지, 카드값은 안녕한지. 며칠 전부터 정리에 집중했다. 습관처럼 노트를 뒤적거렸다. 일 년 동안 잘한 일을 찾아서 스스로 칭찬을 해주자는 기특한 마음이다. 무엇이 변했나. 아침 기상 시간이 바뀌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한 건 아닌데 저녁형 인간이 될수록 몸이 삐걱거려 어쩔 수 없었다. 알람 소리 대신 아침 라디오 뉴스로 몸을 일으킨다. 앵커의 활기찬 목소리를 통해 듣는 간밤의 사건사고 이야기. 욕을 하며 일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욕만큼 나를 일으키는 동력이 있었나 찾아보면 없다. 요가와 커피는 부수적인 동기가 되었고, 최근에는 유산균이 추가되었다. 욕하고, 먹고, 마시기 위해 일어나는 아침이랄까. 나쁘지 않다. 두 번째는 절판된 책의 행적을 끝까지 쫓아 손에 넣은 일이다. 원하던 세 권의 책은 정가에 웃돈을 주고 샀다. 세 권 중 두 권은 한 시인의 수필집이고, 나머지 한 권은 다른 시인의 수필집이다. 모두 초판이다. 날짜를 기록해보면 ‘1989년 12월 11일’, ‘1995년 5월 30일’, ‘1999년 12월 10일’ 순서다. 다소 아래로 가라앉는 내용이고, 펼칠 때마다 재채기가 난다. 읽는 내내 웃는 내 모습이 징그럽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고 말해본다.

하얀 소의 해, 신축년이다. 올해는 어정쩡하게 좋아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접기로 했다. 좋아한다면 확실하게 불태우고, 갈팡질팡한 마음은 다 걷어내기로. 텅 빈 수레처럼 덜컹거리는 마음으로. 아직은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 다짐에 언제 안개가 낄지 모르지만, “나의 삶이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유효기간은 넉넉할 것이다. 그럼 이제 텅 빈 수레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