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쓰고 낮에 고치는 편지

점심으로 마포역 근처 큰 길가에 있는 국숫집에서 막국수와 묵사발, 메밀전을 먹었습니다. 그 식사 자리에서 며칠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진 어느 오십 대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으레 인간관계가 그렇듯 몇 다리 건너면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고향이 제주도 모슬포라고 합니다.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모슬포란 제주에서도 시골 축에 끼는 곳인데 부모, 형제 모두 모슬포에 있었고, 사망한 그 남자만 서울살이를 했다네요. 혼자 사는 사람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에만 매달렸다고 해요. 일만 많이 했으니 모아 둔 돈도 많았겠죠. 으리으리한 집과 무시무시한 자동차, 혼기를 놓쳐 처자식 하나 없이 혈혈단신 혼자의 생활을 하다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사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장례를 치른 부모, 형제는 사망한 그 사람의 집을 정리하던 중 큰 궤짝에서 자그마치 현금 200억을 발견했고, 부모는 나머지 네 명의 형제들에게 각 5억씩 나눠줬답니다. 사실 처음에는 1억씩 나눠줬는데 형제들의 반발이 심해 4억씩 더 얹어줬다고 해요. 200억이라는 숫자가 죽은 남자에 대한 실의를 잊게 한 걸까요. 1억이 적다고 반발했다는 형제들의 모습과 남은 몇백억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쉽게 상상하는 저의 머릿속을 대걸레로 닦고 싶었습니다.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의 죽음이요.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예고 없이 터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상상이겠지요. 속담처럼 여겨지는 일명 어르신의 말 중 거부감이 컸던 것은 “오는데 순서 있지만, 가는데 순서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리고, 젊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니까요. 내가 먼저 갈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 순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는 걸 느꼈달까요. 첫 번째 경험은 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언덕에서 고속으로 내려오던 오토바이 손잡이에 가방끈이 걸려 치이는 사고였습니다. 나는 언덕을 가로질러 건너며 건너편에 서 있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고, 언덕 중반쯤 다다랐을 때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에 치였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장면을 본 친구는 며칠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는 병원에 도착한 후 배와 가슴에 무언가 잔뜩 붙여져 있을 때 깨어났습니다. 그사이의 기억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십 대 후반, 급심한 위경련에 위가 꼬이고, 숨을 쉬지 못해 누군가의 등에 업혀 구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등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그 순간 태어나서 가장 아름다운 박명을 봤습니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요. 그리고 이십 대 후반, 간단한 수술을 받기 전 마취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의 부작용으로 급성 쇼크가 와 이십 분 정도 기절했습니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정도 그냥 누워있었다네요. 숨이 끊어지는 경험은 아니지만, 정신은 끊겼으니 일종의 죽음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쓰고 보니 아찔합니다. 더 살고 싶은 마음에 아찔한 것은 아니고,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죽은 사람이 뭘 알겠냐마는 그런 것들이 걱정입니다. 뭐 예를 들어 정리하지 못한 외장하드 속 난잡한 생각들, 누구나 열어 볼 수 있는 수십 권의 노트들,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 처박아 둔 추억 꾸러미들(치부들). 뒤엉켜 있는 옷장 속 옷들, 속옷들, 양말들,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짐짝 같은 화분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통장들, 가입해 둔 각종 웹사이트 기록들… 다 적기에도 넘치는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 이런 것들이 모두 살아있을 때 나만 죽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란 가능하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나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수년 전 떠나신 외할머니는 예지몽의 대가셨습니다. 통화한다면 저녁 8시에나 전화를 하시던 외할머니는 그날따라 낮에 전화하셨습니다. 다른 말은 없으셨고 “보고 싶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외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마음은 이미 조용한 파도처럼 일렁였지만, 아무 내색 하지 않았고, 내어주신 귤만 몇 개 까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용을 풀이하자면 본인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 없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장난이 심하시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진지했습니다. 귤은 이미 동이 났고, 나는 할머니의 말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년 전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일러둬야 할 것들을 하나씩, 차분하게 설명하셨습니다. 통장의 보관 위치, 각종 비밀번호, 챙겨야 할 서류들, 심지어 주방 수납장에 보관되어있던 된장, 고추장, 간장은 절대 버리지 말고 꼭 챙기라는 말씀까지. “너 엄마는 뒷심이 없어 이런 얘기 하면 울기부터 한다.”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울지 못했습니다. 나도 뒷심이 없지만, 할머니의 착각이지만, 울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날, 부모님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할머니는 부모님댁 맑은 하늘이 보이는 2층 방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우리끼리의 일화지만, 기묘한 일도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생이 다하면 훨훨 나는 새가 되고 싶다던 외할머니께서 부모님 댁으로 가셨을 때 마당에 있는 우체통에 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할머니의 생이 조금씩 당겨질수록 어미 새는 집을 튼튼하게 만들고, 작은 알 세 개를 품었습니다. 알에서 새끼가 나와 입을 뻐끔거리기라도 하면 꼭 할머니가 떠나실 것 같아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할머니는 운명하셨고, 새들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새가 되셨을까요. 모를 일이지요.

나는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말입니다. 그러려면 틈틈이 정리도 하고, 영구폐기할 것들은 싹 다 모아 태워버리고 해야 할텐데 뒤돌아서면 까먹고 귀찮은 것 투성인 사는 게 너무 당연해져버린 사람입니다. 죽기 전까지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내일부터라도 하나씩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필요 없는 물건부터 모아보면 길이 좀 보이지 않겠습니까. 다음 달의 나는 또 새로운 물건에 눈이 돌아가 있겠지만요. 그렇게 애써 죽음을 준비하셨던 할머니의 집을 엄마와 단둘이 정리하던 날 바닥에 남아있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면서 뒷심이 없는 엄마와 나는 열심히 울음을 참았습니다. 스스로 생의 마감을 준비했던 그 마음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할 테니까요. 200억을 남기고 떠났다는 오십 대 남자의 이야기가 긴 편지로 이어지게 될 줄 몰랐습니다만 이 편지를 받으시는 분께서도 준비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귀찮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 자연의 순리를 믿는 편입니다. 모두 순리대로 살다 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우습게도 Philip Glass의 ‘Opening’이라는 곡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