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길
중학교 몇 학년 때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사춘기의 절정 3학년 때의 일이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수업을 계속 들으면 죽을 것 같았다. 당시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친구 둘을 꾀어 가방만 들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왔다. 대학교의 부속 중학교에 다녔던 덕분에 넓은 캠퍼스 안에 중학교가 있었고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우체국과 은행이 있었다. 우체국 통장을 갖고 있던 나는 잔고를 탈탈 털어 지갑에 넣고 택시를 잡았다. 생각나는 역은 딱 하나 청량리역이었다.  엄마가 나고 자란 동네. 역 광장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좋은 시계탑이 있었다. 세차게 뛰는 심장은 불안한 탓인지 신이 난 탓인지 몰라 애써 외면했다.
 역에 도착해 가장 빨리 출발하는 기차의 티켓 세 장을 끊었다. 작은 시간의 틈도 견딜 수 없었던 그 기분은 생생하다. 기차는 춘천행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셋이 우르르 뛰어다니니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를 쳐다봤다. 의자 하나를 돌려 셋이 마주 보고 앉았다. 춘천까지 가는 동안 누군가 우리에게 어디를 가냐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자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각자 휴대폰으로 쏟아지는 문자, 전화를 재빠르게 차단했다.
 춘천에 도착, 다시 택시를 탔다. 아저씨에게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디냐 물었다. 겨울연가를 봤냐는 질문과 남자 주인공 집을 촬영한 곳이 유명하다는 대답을 듣고, 다시 질문했다. 다른 유명한 곳은 없냐고. 닭갈비 거리가 있는 명동이 유명하다길래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청량리행 티켓을 먼저 끊었던 터라 닭갈비를 먹을 돈은 없었지만,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명동 거리를 얼마나 돌았을까. 금세 제자리였다. 파파이스에 들어가 몇 가지를 시켜놓고, “우리 참 멀리 왔다. 지루한 지리 수업은 안 들어도 되니까 좋다. 담임한테 뭐라고 말하지. 애들이 닭갈비 꼭 먹고 오래. 우리 책상은 티 안 나게 뒤로 빼놨대.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걱정, 걱정 또 걱정뿐이었다. 수업만 빠지면 살 것 같았는데 수업을 뺀 나머지가 다 걱정이었다. 춘천까지 와서.
 담임 선생님은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분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싶은데 전교에서 딱 세 명. 나, 춘천에 같이 간 친구 하나, 잘 모르는 친구 하나. 이렇게 셋은 3년 동안 같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과학 담당, 얇은 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젊은 선생님이었다. 사춘기를 이해해줬고, 무단이탈을 문제 삼지 않았다. 나의 과학 점수만 문제로 삼았을 뿐.
 올해 초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들었다. 2년 전 이른 봄에 돌아가셨다는 걸 올해 봄이 오기 전에 들었다. 늦었지만 학교에 전화해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며칠은 선생님이 어땠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을 복기하고 곱씹었다. 이십 대가 되어 다시 마주한 선생님과 나눴던 몇 마디 대화가 아쉽다. 조금 더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았을걸. 우리도 어렸고, 본인도 젊었던 그때 선생으로서는 서툴렀단 말에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던 게 이제와서 목구멍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