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날아가고

엑셀은 아빠의 첫 자동차였다. 그 차를 선택했던 이유는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같은 차를 탔던 것 같다. 작고 좁은 차였다. 짙은 회색이었는데 우리는 쥐색이라고 불렀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주말마다 휴가마다 쥐색 엑셀을 타고 동서남북 국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차에서 들었던 음악은 포크송이나 가사의 주제가 비슷한 국내 가요였다. 동요는 듣지 않았다. 선곡권은 운전을 하는 아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주 듣는 음악이 괴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어느새 같이 흥얼거리고 가사를 따라 불렀다. 그때 가사를 외운 곡 중 해바라기의 <모두가 사랑이에요>는 요즘에도 자주 듣는다.


모두가 이별이에요
따뜻한 공간과도 이별
수많은 시간과도 이별이지요
이별이지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걸 난 알아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마음이 넓어지고 예뻐질 것 같아요
이것이 행복이란걸 난 알아요


뚜루루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걸 난 알아요
이것이 슬픔이란걸 난 알아요

<모두가 사랑이에요>1985.01.15 2집<그날 이후> 수록곡
해바라기


이별이 뭔지, 사랑은 또 무엇이고, 시큰해지는 건 시큼하다는 건가. 감정의 폭이 좁았던 열 몇 살의 어린애가 부르기에 내용이 참 그렇다. 아빠가 밤 운전을 해야 할 때는 노랫 소리를 크게 틀고 구수하게 따라 부르셨다. 아마 잠을 깨기 위해서였겠지. 아빠의 뒷자리가 나의 지정석이었고, 왼쪽 사이드미러에 비친 아빠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곧잘 따라 불렀다. 가사의 의미는 몰랐지만, 막연한 그리움은 느꼈다. 낮은 목소리나 느리게 흐르는 멜로디 때문이었다. 그때보다 감정의 폭은 넓어졌고, 콧날이 시큰한 경험을 두어 번 해보니 구수하게 따라 불렀던 아빠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최근 그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 건 영화 <와일드>장 마크 발레, 2014 의 오프닝이었다. 오래 걸은 탓에 피투성이가 된 발톱을 고통스럽게 뽑는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겠어”라는 말을 한다. 몇 컷이 더 지나가고 메인 타이틀이 뜨며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의 첫음절이 흐른다. 징그러운 발톱 장면은 금세 잊고 뒤통수가 울렸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던 포크송 중 하나였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Away, I’d rather sail away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It’s saddest sound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못이 되기 보다는 망치가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멀리 멀리 떠나고 싶어라
날아가버린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얽매여 가장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네
가장 슬픈 소리를

길보다는 숲이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지구를 내 발밑에 두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1970 Bridge Over Troubled Water 수록곡
Simone & Garfunkel




따라 불렀던 부분은 ‘Yes, I would’ 정도였다. 나머지는 콧노래로 대신 불렀고 아빠도 그랬던 것 같다. 추억은 뭘까. 음악이 있기에 기억력 젬병인 나는 조금 더 짙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추억의 힘으로 살았던 건 아니다. 근데 그게 날 만들었다면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십 대 시절 친구들은 아무도 듣지 않는 김기덕의 <골든디스크> 속 라디오 드라마 때문에 쉬는 시간만 기다렸고, 이십 대 초반에는 구창모의 희나리를 따라 부르며 없는 사랑을 찾아 헤맸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대부분 날아가 버려 어떤 걸 듣고, 읽는지 흐릿하다. 어느샌가 다른 철새가 돌아온다면 모를까. 엑셀은 내가 중학교에 다닐때 까지 함께 했다. 십 년을 훌쩍 넘긴 자동차답게 낡고, 뒤처졌다. 아빠는 아쉬워했고 엄마는 홀가분해 하며 다음 차를 반겼다. 새하얗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새 차가 왔다. 음악은 언제나 같은 곡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