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를
산업으로 바라볼 때
빛나는 것들


빛나는 박시영
스테디 안대호
다이버스 박현규


글 이원희
사진 정은지

︎ <영화 포스터 그리고 사람들> 지콜론북, 2018


“약간의 존중과 방치, 미련 없이 그대로 두는 것.”

간혹 질문을 건네러 갔다가 반대로 질문을 받는 날이 있다. 준비한 질문을 다 건네지 못하거나 현장에서 질문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빛나는’의 박시영, ‘스테디’의 안대호, ‘다이버스’의 박현규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로부터 꽤 많은 질문을 받았고, 준비한 질문 대부분을 다른 내용으로 바꿔야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질문 하는 사람보다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의 질문이 더 많을 경우 이야기의 예상 경로는 이탈한다. 그리고 이탈은 곧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세 사람의 이야기는 공식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공식을 보여주면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령 ‘자기소개’나 ‘영화를 선택한 계기’ 같은 질문들 말이 다. 그래도 꿋꿋하게 물어본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해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박현규 영화 포스터를 전반적으로 디자인하고 있고요. 혼자 활동할 때는 한국 영화, 수입 영화, 다양성 영화를 고루고루 작업했습니다. ‘다이버스’라는 이름으로 혼자, ‘빛나는’의 이름으로 함께 활동합니다.

안대호 저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 일을 시작한 후에 마땅히 취직할 곳이 없어서 혼자 활동을 했었는데요. ‘빛나는’의 박시영 실장님을 만나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작은 규모의 영화나 재개봉 영화는 ‘스테디’라는 이름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스테디’의 일 도 하면서 주로 ‘빛나는’의 일을 하고 있고요. ‘빛나는’의 숨은 조력자 입니다.(웃음)

박시영 영화 포스터 작업을 주로 하고 있고, 업계 굴지의 1위 스튜디오입니다.(웃음)

사실 이 인터뷰는 ‘다이버스’의 대표 박현규에게 먼저 제안했었다. 인터뷰 일정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빛나는’의 박시영, ‘스테디’의 안대호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각각의 팀으로도 활동하지만, 세 곳의 스튜디오 중 가장 오래 활동한 ‘빛나는’의 이름 안에서도 작업한다는 의미라는 것.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 명의 디자이너를 한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그렇게 성사된 공동 인터뷰였다. 다른 이야기보다 세 명의 디자이너가 흩어져 있다가 한 팀으로 뭉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가능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막연하게 이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박시영 처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작업의 양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고 작업의 고루함, 매너리즘에 따르는 것들이 힘들었죠. 작업하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라든가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정도 였어요. 두 번째는 꼰대(?)같은 마음일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기회를 나눠주고 싶었어요. 일을 나눌 기회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돈을 벌 기회를 좀 나눠 가지면 어떨까. 우리 돈 벌어야 되잖아요.(웃음)

안대호 박시영 실장님과 함께하기 전에 2년 정도 혼자 스튜디오를 운영했어요.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거죠. 특히 영화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확장하기까지 한계가 있었고요. 다른 디자이너들은 특정 대학교 출신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선배가 있었다면 저는 마땅히 그런 연결고리도 없었고,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시기에 박시영 실장님이 손을 내밀어주셨고, 길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저한테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박현규 저 역시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회사에 소속이 되어 일하다가 독립을 했고, 프리랜서처럼 움직였어요. 혼자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죠. 사무실을 내야 하고, 직원을 뽑아야 하고,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박시영 실장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합류하게 되었고요. 말 그대로 자본이 큰 이유였죠.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 과감하지 못해요. 매번 같이 작업했던 디자이너만 찾는 식으로요. 이런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고요.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동안 이렇게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사례는 없었거든요.

안대호 저희가 회사의 틀은 갖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까지 회사의 그것과 닮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전체 기획을 했는데 영화의 흐름과 잘 맞는다고 판단이 되면 박시영 실장님이 클라이언트에게 “안대호의 시안으로 가라”고 얘기해주시죠. 그러니까 대표가 디자이너에게 해야 할 일을 시키는 구조가 아니라 알아서 하면 조언을 해주시는 정도, 딱 그 정도예요. 작업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거죠. 그래서 다양한 색깔의 포스터가 나올 수 있고요.

간단히 말하면 세 명의 디자이너는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났다. 박시영은 포스터 디자인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선이 필요했고, 박현규와 안대호는 다양한 작업의 기회가 필요했다. 담백한 만남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우리는 어떤 구조가 이상적이라면 다음 단계 즉, 지속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진다. 세 사람의 작업 방식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성격과 제작 규모에 따라 작업 기간, 방식이 달라진다. 촬영 현장에서 찍은 스틸 사진을 전달받아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스터만을 위한 촬영을 기획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포스터 촬영장에서만큼은 디자이너가 감독이 되는 셈이다.

박시영 영화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크게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상업 영화의 경우, 보통 준비 단계가 끝나고 배우 캐스팅이 진행되면서 시나리오 후반 작업일 때 그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회의를 하고 포스터 촬영을 하죠. 영화가 촬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후반 작업할 때 마케팅이 시작되는 겁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개봉하기 두 달 전, 그러니까 마케팅이 외부로 노출되는 시점부터 보게 되는 것이고, 저희는 영화가 개봉하기 7~8개월 전부터 투입되는 거죠. 다양성 영화의 경우, 작업 환경이 더 빡빡해요. 편수는 워낙 많고, 극장의 수는 제한되어있으니 영화 개봉일의 2~3개월 전에 의뢰가 들어오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안대호 영화마다 다르지만, 포스터 촬영장에서는 배우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극 중 이름을 불러요. 극 중 역할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게 돕는 장치인 거죠. 영화의 특정 장면이나 시나리오상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재구성하고 싶다고 요청하고요. 배우 마다 작업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애매한 방향을 제시하면 영화와 다른 느낌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박시영 저는 압박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배우를 짜증 나게 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좋은 걸 뽑아내요.

안대호 박시영 실장님은 채찍과 당근을 잘 주세요. (웃음)

박현규 현장 상황을 칼같이 구상해도 도착하면 변수가 너무 많아요. 그 변수에 당황하는 사람이 있지만, 무조건 머릿속에 있는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가 박시영 실장님이고요. 현장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재구성하는 거죠. 원하는대로 찍으면 가장 좋겠지만, 변수에서 생기는 좋은 컷도 있어요. 배우가 다른 자세를 취했는데 더 좋거나, 사진작가가 다른 컷 을 찍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거나. 저희는 시안 스케치를 안 해요. 배우에게 느낌을 설명하고 디렉션만 하는거에요.

박시영 비슷한 이야기인데 <꿈의 제인>조현훈, 2016,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2016 은 주인공 포트레잇이 주가 된 촬영이었죠. <꿈의 제인>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명을 세팅하고 배우에게 상황 설정만 던졌어요. “이곳이 당신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술이 잔뜩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장면이다”라는 식으로요. 전반적인 공기를 만드는 거에요. <불한당>은 눈빛과 극적인 감정을 뽑아내야 해서 배우에게 많이 요청했죠. “울어야 한다”라고요.(웃음) 감정을 끌어낼 때 완벽하게 메이크업해놓고 할 수 없잖아요. 순발력이 필요하거나 즉흥적으로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계획을 세워도 저는 설계자일 뿐이고, 시공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어떤 사람이 시공하느냐에 따라 확확 바뀌어요. 배우마다 각자 가진 디테일이 있어요. 얼굴만 등장하는데 <관상>한재림, 2013 처럼 힘이 생기는 포스터가 있듯이. 포스터의 뉘앙스를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료인 셈이죠. 동업자이자 조력자예요. 간혹 전체적인 포스터의 그림은 포기하고 감정만 갖고 갈 때도 있어요. 그때그때 현장에서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해요. 그림이 안 예뻐도 기억에 남는 포스터가 있는 것처럼요.

기억에 남는 포스터. 기억에 남아있는 기간으로 보면 각자의 첫 포스터보다 긴 시간 남아있는 것이 있을까. 작업에 기념비적인 숫자를 부여하는 것은 조금 촌스럽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그리고 기억할 수 있다면 첫 작업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바뀌지 않기 위해 다잡는 마음이 있는지.

안대호 메인 포스터의 서브 포스터 작업이나 수입 영화에서 타이틀만 바꾸는 작업을 제외하고 가장 처음 맡은 영화는 <화양연화>왕가위, 2000 에요. 아트나인에서 작게 몇 회 차 상영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때 극장에 붙여 둘 포스터가 필요했어요. 국내에 제대로 된 포스터가 없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재해석이라는 걸 해봤던 영화였고요. 한국 영화 포스터에 꼭 들어가야 하 는 제목, 카피, 개봉 일자 같은 공식에서 벗어나 제목만 넣고 작업했어요. 인쇄를 많이 하거나 홍보용으로 배포하지도 않았고, 대략 30장 정도 출력했어요. 예전에는 외화를 수입하는 곳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항상 영문 제목을 한글로 바꾸는 작업만 했었거든요. 처음 작업했을 때와 달라진 점은 매우 많아요. 매번 할 때마다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놓치지 않으려 고 하는 건 ‘이 영화에 대한 매너를 지키자’ 정도에요. 영화가 가진 작업자로서의 태도를 잊지 말 것, 하고 싶은 게 뚜렷해도 이 영화에 반하면서까지 하지 말 것. 가장 첫 번째 태도인데 이것 외에는 작업할 때마다 규칙은 바뀌어요.

박현규 다른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 맡았던 첫 영화가 <오래된 정원>임상수, 2007 이었고, 독립해서 다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하게 된 영화가 <미스터 컴퍼니>민환기, 2014 였어요. 작업할 때 풀어내는 방식에서 자신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 방식을 영화의 정서에 맞게 풀어내는 게 관건인데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땐 과하지 않게 했던 것 같아요. 혼자 활동할 땐 주변 상황에 의해 변한 것도 있고요. 보여주고 싶은 욕구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했던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 관객에게 이슈 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 욕심이 있었으니까요. 돌아보면 ‘적당히’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영화마다 다른 것 같아요. 매너를 지켜줘야 하는 영화도 있지만, 제가 더 해줘야 하는 영화도 있고요. 단순히 저의 작업을 뽐내자는 의미에서가 아니고요.

박시영 촬영부터 모든 걸 맡아서 했던 <짝패>류승완, 2006 가 첫 포스터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첫 영화는 <카페 뤼미에르>허 우 샤오시엔, 2005 에요. 작업하다가 중간에 쫓겨났고요.(웃음) 쫓겨난 이유는 영화 포스터 같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장난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13년 전이네요. 영화제 포스터를 만들다가 영화 포스터를 처음 디자인했었고, 그때는 포스터 디자인의 규칙을 전혀 모를 때였죠. 이 산업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상업영화는 개봉하면 극장 앞이나 버스에도 붙어있는데 다니다가 보이면 짜릿하고, 그 중독성이 어마어마했어요. 영화 자체가 너무 좋았고, 지금은 돈이 주는 즐거움이 제일 크죠. 물론 지금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어린 마음에 좋아했던 그것과 다르죠. 지금은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땐 열정이 바탕이 었다면 지금은 시나리오를 더 살펴보고요. 건방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 산업의 일원으로써 내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목표 였고, 지금은 판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 영화 포스터가 잘 나오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때 고루해졌고, 최근 다양성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디자인적으로 흥미로워지는 시점인데 많은 사람이 좋은 디자인을 자주 접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포스터는 대중적인 매체이고 가장 노출이 많이 되기도 해요. 대중성이 짙은 매체의 질이 향상되면 디자인 산업의 전반적인 질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박시영은 매년 상상마당과 함께 <대단한 단편영화제>의 일환인 <대단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감독과 디자이너를 무작위로 연결하고, 감독에게 영화 포스터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스스로 느낀 판의 고루함을 푸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

박시영 독립 영화로 데뷔하는 감독은 현장에서 촬영하는 방법은 알지만, 영화를 포장하는 방식은 서툰 편이에요. 물론 영화는 촬영한 원본도 중요하지만, 시장에 나왔을 때 하나의 상품으로서 어떤 특색이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현대 영화 산업에서 보이는 것의 중요성이 30~40% 차지한다고 봐요. IP 영화만 봐도 포스터부터 노출되잖아요. 포장의 경험이 없는 감독들이 그다음 단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고요. 두 번째는 영화 포스터의 형태가 너무 고착화되어 있으니 풀어보자는 이유도 있었죠. 모든 디자이너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일은 무작위에요. 일이 들어 오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일을 풀어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경험, 기회, 본인의 영감으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요구를 듣고,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받고, 그걸 분석하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국내 영화 포스터를 주로 작업했던 빛나는의 첫 외화 포스터는 <트라이브>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2015 다. 포스터 가 공개된 후 칸영화제 측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아름다운 포스터’라는 평을 남겼고, 제작사는 “한국판 포스터는 영화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어쩌면 영화 포스터가 담고 있어야 하는 영화의 온도와 미적인 부분까지 두루 섭렵했다는 평이 아닐까. <트라이브>를 비롯한 영화에 접근하는 스튜디오의 방식은 무엇일까.

박시영 <트라이브>는 해외 가이드가 없었고, 안대호 실장과 함께한 공동 작업이에요. 예술 영화는 그러니까 조금 더 예술성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는 더 간단하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영화가 가진 중요한 키워드를 다 떼면 남는 게 뭐가 있을까 보는 거죠. <트라이브>는 농아 학교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에요.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젊은 청춘들’이라는 것만 갖고 왔을 때 남는 것을 보는 거죠. 포스터는 청각적인 게 없어요. 그러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즉, 단색이나 드로잉, 우리가 보는 사진의 구체적인 이미지는 아닐 거란 말이죠. 들리지 않고, 드문드문 들리는 것을 시각적으로 풀면 사진의 이미지는 아닐 것 같고, 다채로운 색이 나타나는 것도 아닐 것 같고, 거친 형태만 남아있는 그림일 것 같고. 이런 여러 가지 요소를 조합해서 비주얼로 푸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어려워요. 어느 것 하나 튀어 올라서 잡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니거든요. 사극이면 사극, 남자면 액션, 이런 식으로 하나의 포인트를 잡기 어려운 영화들이 있잖아요. 그런 영화들은 키워드를 하나씩 지우다 보면 건조하게 남는 게 있어요. 반면 <문라이트>베리 젠킨스, 2017 는 영화의 온도에 비해 키워드가 과했어요. 흑인, 게이, 마약. 애써 키워드를 버리고, 감추려는 게 아니라 영화가 가진 정조를 더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던 작업이었어요. 장르가 무엇이든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풀어내는 걸 경계해요. 그래서 자유롭다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아요. 이건 분명 설득의 작업이에요.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들려줄 방법을 찾는 거예요. 이야기를 전달받은 상대방이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일종의 방언 같은 것인데 언어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죠. 대중적인 인기가 없고, 어렵고, 무겁고, 정치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조금 더 서정적으로 풀려고 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한 장르이기 때문에 조금 더 풀어진 느낌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요. 사람의 이야기는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고 특히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2016은 거제도 조선소 노동자의 이야기인데 그 안의 풍경을 더 신경 쓴 거에요.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장면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주로 인터뷰 위주, 자료화면 위주이고, 집약된 것이 아닌 병렬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다른 작가의 사진을 많이 쓰죠. <그림자들의 섬>은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었고요.

영화 산업은 상업과 예술이 긴밀하게 뭉쳐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장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영화의 흥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수년간 판매된 책의 부수와 일주일 사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감히 비교하기 힘든 수치다. 이런 사례를 쉽게 일반화할 수 없지만, 그만큼 영화는 대중과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만큼 사랑 받는 영화와 관련된 상품 시장도 점점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산업의 가장자리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관객은 어떤 시선 을 갖고 있을까. 과연 영화만큼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다채롭다고 느낄까.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박시영 국내 영화 시장이 크다고 할 수 없어요. 쇼박스, 메가박스 등 영화에 투자와 배급을 하는 회사는 3~4개, 관련된 디자인 스튜디오는 대략 5개죠. 그러니까 굳이 디자인 비딩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반면 해외는 극장 체인마다 걸리는 디자인이 다 달라요. 메인 키아트를 두고 비딩을 하는 경우는 표면적인 것일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내정된 경우가 많아요. 실질적인 키아트가 나오면 그걸 베리에이션만 하는 업체가 따로 있고, 일이 세분되어있을 뿐이에요. 진짜 비딩을 하는 건 IMAX용 포스터, 다른 용도의 포스터로 변경할 때죠. 넷플릭스, 아마존은 해당 디자인 업체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쓰고요. 한 해 동 안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예고편이 약 4,000편이라고 하면 예고편을 제작하는 업체는 5개 밖에 없어요. 독과점 시장이에요. 어디나 똑같아요.

박현규 디자인을 하는 사람끼리는 누가, 어떤 포스터를 맡았는지 다 알죠. 클라이언트는 어떤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괜찮은 작품을 해왔다고 느끼면 맡기는 거예요. 디자이너마다 각자 풀어가는 스타일이 있겠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다 비슷한데 기회를 잡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이 업계에 들어올 수 있는 진입 장벽은 낮더라도 괴리감이 있어요. 제 경우를 돌아보면 ‘열심히 디자인하고, 좋은 작품을 하다 보면 순차적으로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 업계에 들어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환경인 거죠. 제 힘으로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까 해 뜨고 지는 거 보면서 의미 없이 일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박시영 돈을 지급하는 사람은 모험할 필요가 없죠. 일을 받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해내면 굳이 새로운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런데 이건 돈을 지급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업계의 몇 개의 업체가 나눠 먹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디자인 팀, 새로운 사람을 키우려는 의지가 없는 데서 출발하는 거예요. 시장의 파이가 한정적이라면 잘 나눠갖는 것도 방법이긴 해요. 꾸준히 나눠 가졌던 사람들끼리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 시장의 파이는 밑에서 커야지 커졌다고 할 수 있거든요. 반대로 여러 업체가 생기기 시작하면 시장이 활성화가 되고, 단가를 올리기 쉽죠. 우리는 중견 업체이기 때문에 올릴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계속 영세한 하나의 시장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가다 보면 결국엔 고루해지겠죠. 특히 영화와 관련된 상품의 시장에 대한 부분은 각자의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분리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포스터, 아트 포스터, 전단 이런 것은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죠. 돈을 받고 판매하는 디자인은 달라야 하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해요. 영화 포스터의 목적은 대중을 대상으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함이에요. 포스터나 상품을 사는 사람은 해당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고, 영화를 관람했다는 경험 자체를 간직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건 관객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거든요. 상품 제작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주체가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면 안된다는 거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서비스와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은 구분시켜야 해요. 그런 노력이 없이 예쁘게 만들어서 판매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이 시장이 굳어지는 과정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어떤 타성이 생겨요. 홍보와 상품 사이에서 상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영화와 상관없이 예쁘게 만든다든지.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결국엔 다양성을 해치는 거에요. 새롭고 다양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비슷하거든요. 영화 자체가 가진 다양성마저도 비슷해질 거란 거죠. 이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 부가 판권같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디자인이 흘러갈 수밖에 없어요.

안대호 어울리지 않는 걸 만들어내니까, 영화와 상관없이 만드는 경우도 있잖아요.

박현규 예전에는 영화의 홍보를 위해 이벤트성으로 제작을 하는 문화였다면 지금은 갈수록 비즈니스처럼 흘러가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제작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아니고, 활용하는 주체가 비즈니스로 생각하니까 시장이 커지는 거죠.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 끝에 판매가 시작된 것일 수도 있고요. 근데 너무 과해져서 관객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뭔가를 사러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안타깝죠. 우리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작은 영화사의 경우, 제작할 돈은 없는데 다들 만드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이상한 분위기인 거에요. 좋은 영화로 평가 받는 게 맞잖아요. 애초에 수입할 때 상품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수입한다던가, 그런 소스가 많은 영화를 수입 한다든가 이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박시영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다양해져야 해요. 영화도 다양해져야 하고요. 최근 개봉한 영화 중 남성 액션 장르로 어마어마하게 흥행한 사례가 있었어요. 그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으면 엎어졌을 기획이 정말 많았는데 앞으로 몇 년간 비슷한 ‘19금 남성 누아르’ 장르가 계속 나올 거에요. 솔직히 지겹죠.

박현규 어쩔 수 없는 추세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남성 듀오’, ‘범죄’ 이런 요소가 시장에서 팔리니까. 안타깝죠. 코미디 장르나 정통 멜로 장르는 흥행하기 힘드니까요.

안대호 지금은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보다 생각을 비우고 쉬러 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요즘은 <김씨 표류기> 이해준, 2009 같은 영화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 영화가 나와야 사람들의 선택권이 생기는데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외하니까요.

박시영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해야 되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의 공동체도 존중받아야 하고, 그쪽이 건강해지려면 산 업도 건강해져야 해요. 디자이너가 디자인이 주는 만족감 외에 다른 것을 고민하지 않고, 디자인만 예쁘게 한다는 건 위험한 거예요. 디자인 스튜디오가 이 산업의 일부라는 걸 알아야 해요. 각자의 연차와 위치에 맞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요. 목소 리를 내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위험성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규칙이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안대호, 박현규의 후배가 나오겠죠. 디자인 산업은 다양해야 해요. 다양성은 다양한 디자인의 주체가 나와야 건강해지고요. 그 주체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요. 경력에 따른 차등은 당연하고, 이런 것들이 선순환으로 이뤄져야 해요. 우리가 모인 진짜 이유는 산업적인 부분이 커요.

세 사람이 모인 진짜 이유. 영화를 산업으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산업의 요소로 바라봤을 때 판을 바꾸고 싶었다는 박시영의 결단과 박현규와 안대호의 투입까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세 개의 스튜디오이자 하나의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연합이 생겼다. 이런 사례가 잘 번져 건강한 시장에서 디자이너가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박시영 제가 막 시작했을 때 어려웠던 부분이 이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잘 하는 친구들이 도매 단위로 일을 하는 걸 보면 화가 나요.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개성이 있고, 디자인의 기술 등 독립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친구들인데 그 렇게 일을 못 하면 도와주고 싶죠. 제가 가진 권위를 빌려 쓰라는 거에요. 디자인은 혼자 열심히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의뢰가 들어와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이 친구들이 빛나는 소속의 포스터 디자이너가 아니라 스테디, 다이버 스를 운영하면서 본인만의 색을 지킬 기회를 수월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거죠. 대신 저는 이 친구들 덕분에 고루함을 버리고 새로운 시선이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고요. 한 업계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다면 발언권이 있어요. 분명 자신의 자리에서 바꿀 힘이 있어요. 아까운 친구들 너무 많아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다가 힘들어서 영화계를 떠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안대호, 박현규 이 두 사람도 회사 생활을 포함하면 거의 8년 차인데 다음 세대에 누 가 있는지 찾아보면 모르겠어요. 없어요.

박현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경력을 보면 8년~10년 차인데 그 중간 세대가 없는 거예요. 지금 막 대학교를 졸 업하고 업계에 발을 들이는 친구들을 보면 우리가 해왔던 방식까지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열정의 유무를 떠나서요. 그러니까 그런 친구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합당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자리를 잡고, 생활을 존중받는 그런 시스템이요.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일하는 연령대는 갈수록 높아지고, 새로운 누군가 시도할 기회는 없어지니까 다음 세대 친구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거죠.

박시영 기회와 출발 선상의 불균형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그 자체로 갈 수 있는 범위가 막혔다는 것은 비정상이에요. 저희 같은 사람의 책임이 커요. 그동안 고민하지 않고, 방치하고, 내 욕심만 찾았던 것. 누굴 탓하겠어요. 우리가 가진 탐욕스러움 이죠. 돈을 더 받기 위한 탐욕은 대찬성이에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하겠다고 부리는 탐욕은 아닌 것 같아요. 근본적인 문제를 토대로 우리가 모였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잘 맞아서,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면 멋있겠지만, 현재 비정상인 걸 우리 범위 내에서 돌파해보자는 마음이 커요. 안대호 이런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소문이 돌기도 해요. 빛나는에서 독립을 했다더라, 회사를 차렸다더라 등등. 굳이 소문에 관해 설명을 하진 않거든요. 회사라는 시스템에 타성이 젖으면 소모품밖에 안 되거든요. 디자이너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거죠. 대표로서의 욕심도 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욕심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봐요.

박현규 약간의 존중과 방치. 러프하다고 하는 게 맞겠죠. 사무실도 그렇고, 미련 없이 날 것 그대로 두는 것도 그렇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저에 깔린 것이 어느 정도 맞으니까 함께 할 수 있고요. 바깥에서 보는 것과 직접 들어와 얘기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왜 같이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거든요. 수익 분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요.

박시영 아주 간단해요. 빛나는으로 들어온 돈은 제가 받고, 이 친구들에게 월급을 주고요.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보너스, 휴가 등 시스템적인 것은 충분히 지급해요. 연봉 동결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스테디나 다이버스의 수익은 각자 가져가면 되고요. 빛나는에서 한 작업이지만 이 친구들이 디자인한 건 각자의 이름으로 크레딧이 올라가요. 노동조합의 형태이고, 서로에게 손해 볼 것 없는 시스템이죠. 바깥에서는 우리 회사를 두고 말이 많아요. 이미지의 선입견도 많고, 박시영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요. 그게 너무 강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이 친구들이 갖고 가는 이점만큼 저도 있어요. 혼자 운영할 때 신경 쓸 것들이 많은데 분담할 수 있죠. 저는 나름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요.

박현규 적당한 쇼맨십이 중요해요. 빛나는과 함께 하면서 혼자 활동할 때 허용되지 않았던 부분이 쉽게 풀리는 경우도 많아 요. 그걸 적당히 잘 이용하는 것,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어느 시점을 넘기면 생길 것 같아요.

박시영 10년 정도 하면 생겨요. 그 능선만 넘으면 본인이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충분히 일 할 수 있어요. 사실 어떤 구심점으로 세 스튜디오 뭉쳤는지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어요. 우리의 사례를 보고 다른 곳들이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디자인 스튜디오가 본인의 스튜디오에 부속돼서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것이 더 이상 맞지 않을 거예요. 옛날에는 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특정 대학 출신이 특정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그 안에서 한계가 있다면 스튜디오끼리 연합할 수 있거든요. 각자의 성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요. 뭉치기만 해도 각자 가진 클라이언트가 자연스럽게 공유되죠. 뭉쳐있으면 바깥에서 더 큰 기회가 올 수 있어요. 생협, 노조의 형태까지는 아니더라도요. 뭉쳐있기만 해도 변화가 생겨요. 이 부분을 확실하게 알리고 싶어요.

박현규 ‘내가 다 할 거야’ 라는 욕심이 가장 큰 거죠.

박시영 제일 좋은 디자인은 적어도 내가 조금 머리 한 번 비울 수 있고,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절박하면 절박한 것밖에 안나와요. 한 발자국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위치면 그만큼 새로운게 나오는 것 같고.

박현규 빛나는처럼 오랜 시간 굵직굵직한 영화 일을 많이 했던 회사들이 몇 곳 없는데 이런 시도를 한다는 건 후배 입장에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돼요. 기존에 있는 스튜디오들이 많은 직원을 두지 않아요. 이유가 있어요. 작업량보다 견적이 작아서 그래요. 여러 명이 나눠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한두 명이 머리 맞대고 풀어내는 시스템이거든요. 일이 순서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동시다발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니까 직원을 많이 둘 수 없어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업체 수는 적죠.

박시영 앞으로 중견 스튜디오가 꾸준히 일을 더 하려면 시장도 다양해져야 해요. 다양성이 죽은 시장은 결과적으로 작아질 수 밖에 없거든요. 한창 생과일주스 가게 생겼다가 싹 없어지고, 카스텔라 가게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양하게 공생하면 다 살 수 있는데 어느 한군데로 몰리니까 다 같이 사라지는 거예요. 한 철 장사는 싫거든요. 선의를 위해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서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근시안적으로 앞에 놓인 일만 하면 이 시장은 분명히 죽어요. 이 친구들이 들어오기 전에 한창 일이 많이 들어왔던 때가 있었어요. 정신없이 하다 보니까 결과물이 엇비슷해졌어요. 그럼 또 일이 줄어들고, 잊혀져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예요. 시스템 자체가 활력을 띌 수 있게 바꾸려는 주체가 있어야 해요. 디자이너가 정말 못 하는 게 이런 것이기도 해요. (웃음)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는 연합체를 꾸려야 해요.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끼리 뭉쳐서 갖고 있는 것을 꺼내서 공유해야 해요.

이 작업을 왜 계속하는지 물었을 때 박시영은 우스갯소리로 이곳에 잘 못 찾아온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일에 치여 피곤하고, 고단하다는 듯 말이다. 그래도 그 웃음 뒤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작업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박시영 ‘이 일을 왜 계속 해야 되지’라는 질문이 제 안에서 계속 맴돌아요. 취미가 아니고 일이면 생각이 많아지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어떤 1차적인 즐거움과 중독성이 있길래 이 일을 계속할까 따져보면 옛날에는 칭찬이었어요. 누군가 포스터 좋다고, 디자인 잘했다고 하는 칭찬. 그런데 이 칭찬이 10년을 넘기면 무뎌져요. 그때는 외부의 칭찬에서 자기만족의 단계로 진입하게 돼요. 하다못해 스스로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면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시점에 느끼는 만족감은 돈이에요. 일한 만큼의 돈을 받았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상대의 칭찬이라기보다 내가 의도한 대로 잘 풀어냈을 때 느끼는 만족감, 누군가 나의 의도를 알아줬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있어요. 이런저런 상황 에서 해냈다는 것. 모든 디자이너가 비슷하게 겪는 것인데 영화 포스터만 한정 지어서 보자면 이 매체는 소수의 몇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죠. 우리 엄마도 알고, 동생도 알고, 남자 친구도 알고, 여자 친구도 알고 나의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극장에서,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누군가 보고 있기 때문에 스릴이 있어요.

안대호 저도 비슷해요. 자극적이어서 좋아해요. 특히 나의 작업이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된다는 것은 디자이너라면 기분 좋은 일이죠. 엄청난 물량과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디자인이니까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반응이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게 중독 같아요. 특히 결과가 주는 중독 그게 가장 크죠. 버스마다 내 작업물이 붙어있고, 사람 많은 강남역의 가장 큰 광고판에 붙어있는 작업물을 보면 혼자 일 다 한 느낌이 들어요. 노력을 티 내지 않고 결과물로만 이야기하니까요.

박현규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화 포스터 작업이 아닌 다른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감정이 버티질 못 해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 일은 풀어내는 방식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고, 그걸 제지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니까 시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출하게 해주는 분위기이에요. 다른 디자인은 일이거든요. 빨리 확인 받고, 빨리 진행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거예요. 다음 단계를 위해 적당히 포장해서 넘기자는 분위기인 거죠. 반면 영화 포스터 디자인은 고민의 여지가 많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새로운 시도가 인정을 받으면 스스로의 만족감도 생기고, 그래서 저는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상업적인 아티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하는 동안 세 사람에게 받은 질문은 ‘최근 대두되는 다양성 영화 포스터의 흐름은 어떤가?’, ‘잘 만든 영화 포스터의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 포스터를 볼 때 카피도 읽는가?’, ‘디자인 스튜디오 세 곳이 뭉쳐있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장 최근에 본 영화 포스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이 질문들은 세 사람에게 되물어도 어색하지 않다. 즉 바깥에서 직업적으로 안정적일 것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여전히 영화 산업,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 건네받은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얼버무리거나, 다시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순발력이 부족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셈인데 어정쩡한 대답에도 세 사람은 진지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사람, 극장 앞에서 포스터를 관찰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디자이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