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중 조각들
(2014~ )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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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 들이키고, 방마다 블라인드 올리고, 라디오 틀고, 그라인더에 원두 두 스푼 넣어 빠르게 돌리고, 빨코 밥 준비하면서 오븐 데우고, 모카포트에 물 붓고, 원두 착착 넣어 온도5 타이머7분 맞춘다. 그 사이 커피에 넣을 생수 400ml 끓이고, 다 데워진 오븐에 식빵 두 장 밀어 넣고, 머그컵 두 개 꺼내 하이라이트 앞에서 발 동동하면 커피 완성. 순서가 엉키면 고장 난 로봇이 되는데 오늘 아침은 완벽했다.
>조카를 만나는 날이면 작은 일이라도 깨우치는 순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간식과 노래였다. 조카의 젤리는 내가 어릴 땐 금지된 간식이었다. 한 봉지 가득 들어있는 젤리를 나눠먹으며 조카보다 빠르게 (맛있는 맛을 골라) 먹는 자신을 발견, 지나친 금지의 결과는 폭주하는 사람이라는 깊은 깨우침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는 율동을 노래에 맞춰 추는데 두어 번은 흘려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심상치 않아 찾아봤다. ‘문어의 꿈’. 귓구멍을 후벼파고 들어도, 다시 들어도 근래 들었던 노래 중 가장 춥고, 외롭다. 뭐야 이런 노래를 왜 어린이집에서 알려주는 거야 그러다가 그냥 나도 서른몇 살 어린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조카어린이가 이모어린이의 구슬픈 마음을 알려면 몇 겹을 더 살아야 하는가. 그런 이야기.
> 불안할 땐 냉장고에 있는 야채 몇 가지 손질해서 솥에 넣고 푹 찐다. 불린 병아리콩 넣어 만든 현미밥, 끓는 물에 8분 삶은 반숙 계란과 먹으면 올라왔던 불안도 싹 가신다. 상담쌤이 수면과 식욕에 대해 물으셨는데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다고 대답했다.
> (꿈) 어젯밤 전철에서 중학생 소년과 난투극을 벌였다. 역 두 개가 지나갈 동안 나름 거친 싸움이었는데 졌다.
(현실) 밀린 수업 듣고, 동네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셨다. 셀린 시아마가 각본을 썼다는 영화를 봤고, 주인공이 변덕을 부리면 끝까지 보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았다. 월드컵은 관심 있는 경기만 챙겨보고, 카타르와 세네갈 경기의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다.
> 방울토마토 한주먹 송송 썰어 올리브유에 볶다가 계란 두 개 곱게 풀고, 후추 솔솔 뿌려 같이 볶으면 아름다운 한 접시 완성. 아침, 저녁으로는 청도에서 나고 자란 씨 없는 감 하나씩 먹는 호사를 누린다. 먹는 게 최고다.
> 그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서 막 나온 아주머니가 하늘을 보더니 “하늘 꼬라지가 내일도 덥겠네"하는 말을 들었어. 하늘이 노랗고, 빨갛고 그랬거든. 앞으로 그런 하늘을 보면 ‘다음 날 더울 꼬라지네'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어제 진짜 더웠거든.
<베겟머리 서책>을 펼쳤는데 그 아주머니가 떠오르는거야. 이쁘다고 생각한게 맥 빠지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거든.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조르주 페렉인데 몇 권에 걸쳐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걸 이야기해. 그래서 오랜만에 조르주 페렉 책도 뒤적거렸어. 아주머니 덕분에 날씨 점치는 법도 배우고, 책도 읽었네. 그럼 이제 할 일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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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이 절판되었다. 2쇄까지 꽉 채워서 끝. 아침에는 농산물꾸러미와 커피 한 잔 반을 들이키고, 점심에는 점괘가 들어있는 차 한 잔. 점괘 보려고 매일 한 잔씩 꼬박꼬박 마신다. 모든 성실은 집착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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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정리하다가 오토바이 사고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 때문에 생긴 오른손 상처는 이게 상처인지 주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려졌고, 기억도 두툼한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퇴원하고 먹은 짜장면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맛있었어 그 짜장면. 그 집 오토바이에 치인건데!
>작업실 아래층에 드럼 학원이 있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늦게 와서 치는 사람은(동일인 같음) 콜드플레이 부류의 곡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서글프다. 구간반복 중독자 같은데 계속 서글프다가 간다. 더우니까 더 슬퍼.
집의 큰방 창을 열면 보이는 빌딩 공사가 거의 끝나간다. 건물 뒤편의 바닥 타일 시공은 2인 1조로 착착 진행 중이다. 낮의 더위는 욕이 튀어나올 정도니까 저녁 7시부터 밤늦도록 조명 하나에 의지해 작업을 이어간다. 작업자1이 삽으로 접착제를 퍼서 바닥에 퍽- 내려놓으면 작업자2가 쌓아놓은 타일을 하나씩 붙인다. 완공 후에도 창문을 열면 타일 시공팀이 생각날 것 같다.
새잎이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황칠이가 새잎을 세 개나 만들었다. 막실라리아 꽃 이후로 소리를 질렀다. 지난주 퍼부은 장대비와 습도 때문에 서울을 자생지인 제주로 착각했나 보다. 세 개가 웬 말이야. 하나만 튀어나와도 기절할 판에!
>잠을 잘 자는 나에게 불면의 밤이 오면 궁여지책으로 라디오를 아주 작게 틀고, 잠을 기다린다. 듣는 라디오 채널은 딱 하나라서 선택의 괴로움은 없다. 새벽 시간에는 낮에 했던 방송이 다시 나온다. 좋아하는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방송이 나오면 목소리를 듣느라 소리를 조금 키우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잘 들으려고 집중하면 금세 잠이 든다. 오늘이 그런 밤이다.
>주기적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꿈을 꾼다. 문이 열리지 않는 건 기본. 위아래, 옆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제는 용산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대학로에서 멈췄다. 이 정도면 전철이라 생각하고 덜 무서워하면 좋겠지만, 꿈속의 나는 바보라서 엘리베이터가 옆으로 움직인다며 운다. 대학로에서 내리면 거리의 모습은 충무로다. 와중에 비도 내리고, 길을 걷다가 용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보지만, 없다. 잠에서 깨면 안도의 숨을 쉰다. 몇 년 전 병원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경험이 끊임없이 쫓아다닌다.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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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 터진 라면과 설익은 만두 두 개.
>‘애인’과 ‘연애’
두 개의 단어가 주는 단물이 모두 빠진 지금이 이 연애의 진짜 시작점이 아닐까. 모든 기대와 두근거림이 세탁기 물 빠지듯 다 빠진 상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자주 싸울 수밖에 없다는 어떤 박사의 진단이 나의 마음을 만진다. 이 이야기를 오늘, 순천향병원에서 양재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H와 나누었다. H는 본인의 낮은 자존감이 모든 만남에 걸림돌이 된다고 했고, 나는 쌈닭 같은 성격이 지금의 연애에서만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가슴이 뻥- 뚫리는 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애인이 있어도 채워질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다.
> 아침에는 급한 일이 있어 세수도 못 하고 용산역에 다녀왔다. 마무리하고 들어와 라디오를 틀었는데 마침 랑랑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오네. 여유롭고 낭랑한 피아노 연주가 다 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물건의 위치를 여기서 저기로 자꾸만 옮긴다. 오늘은 작은방에 있던 책장 하나를 큰 방으로 옮겼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시집, 노트만 꽂아놓은 책장. 좁은 이 집에서 제일 바쁘게 움직이는 듯하다. 아침 라디오는 그랬고, 지금은 춘향가 중에서도 ‘이별가’가 나오네. 오늘 해도 빌딩 뒤로 숨고, 마감은 여전히 진행중, 로딩중, 준비중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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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쌓이다 보면 집 잃은 똥강아지처럼 다리를 달달달 떨게 되는데 요 며칠이 그랬다. 어딘가에 ‘담대함 좀 나눠 주세요 좀!’ 하고 빌었던 게 16년인가 그랬는데 아직도 나눠 받지 못한 걸 보면 상대도 줄 마음이 없는 건가 싶다가 괘씸했다가 그런다. 겨울에는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봐야 한파인 걸 안다. 춥다는 핑계로 며칠 작업실은 등지고, 집에서 일하는 와중에 눈이 많이 내렸길래 옥상에 올라갔다. 작년 봄에는 백로가 죽어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팬케이크도 계란말이와 비슷해서 잘 되는 날에는 잘 되는데 안 되는 날에는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안 된다. 오늘은 잔뜩 화가 난 팬케이크를 먹었다. 아침, 점심에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둥굴레 한 잔을 마셨다. 먹고, 마시려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데 사이사이 티 안 나게 노는 시간도 많아서 더딘 기분이다. 더디고 된소리 나는 기분 알랑가 몰러.
>여차저차 번거로운 일이 생겨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CCTV를 봤다.(누구나 볼 수 있다) 조금 부풀려 네 시간 정도 같은 자리에서, 오며 가며 지켜봤다. 번거로웠던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곳저곳을 눌러봤는데 처음에는 살았던 동네, 자주 다니던 동네, 좋아했던 동네를 훑고. 다음에는 모르는 동네(흥미가 떨어진다)를 보다가 몇 장면은 순전히 재미로 적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 새벽 1시 동교동 삼거리 지나 왕복 8차선을 무단횡단하는 사람, 신문배달부가 뛰다가 신문 떨어트리는 장면, 무려 여섯 사람이 모여 한참을 떠들다가 차를 타고 떠나는 과정. 그러다가 손가락이 한동안 멈춘 곳은 동호대교였다. 구리 방면으로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반짝 빛나는 게 어찌나 이쁜지. 도로 위 차들이 줄지어 달릴 때 드는 생각은 - 어디로 가는 걸까. 집으로 가는 걸까. 목적지가 있으니까 달리겠지. - 달리는 차만큼 줄지어 선다. 거 참 되게 이쁘네. 가로등 빛이 한강물에 비치는 것도, 달리는 차의 쌍라이트도, 저어 머얼리 보이는 도시 불빛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딱 그 정도. 연말이라 그런가. 마음이 호수처럼, 경계선 명확한 호수만큼 넓어진다.
>옆집 할머니의 기상시간은 오전 6시 언저리. 일어나셨는지 알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와 웃으며 통화를 하기 때문이다. 자는 방을 옮긴 뒤로는 할머니의 전화 소리에 깨지 않는다. 할머니가 이른 시간부터 바쁘신 다른 이유는 오전 10시가 되기 전 누군가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루는 “언니~” 하며. 하루는 “아이고 하하~” 하며. “아이고”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70년대에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옆집 할머니와 내가 사는 층은 이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 층이다.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지 않는 나는 가끔 옆집에서 들리는(현관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소리에 부러움을 느낀다. 문턱이 높지 않은 사이의 친구가 가까이 있는, 그런 게 부러운 거지. 그러다가도 매일 아침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상상하면 그런대로 끔찍해서 부러웠던 마음은 다 헛것이 된다.
때마다 맛있거나 조금은 탄 것 같은 음식 냄새가 현관 밖으로 삐져나오면 오늘은 뭘 해 드셨는지 대충 짐작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오는 내게 “색시가 왜 들어 신랑 시키지” 하시면 할머니께만 보이는 유령 신랑이 옆에 있나 싶어 돌아보게 되고, 해마다 단감을 몇 개 가져다드리면 놀라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다가 우리 집 쪽으로 쓰레기를 방치하시면 마음은 차갑게 식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마음 붙잡고 사느라 번거롭다. 언젠가는 이웃으로 이별할 날이 오겠지. 옆집 할머니가 그리울까. 그건 아니다. 그럼 내 마음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고 정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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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니 중 가운데 뒤쪽에 작은 이가 하나 더 있다. 한 몸처럼 붙어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혀끝이 그 작은 이에 닿아 혀를 좌우로 움직이는 습관이 있다. 작은 이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자라면서 생겼다. 놀란 엄마에 비해 치과 선생님은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해 그 자리 그대로, 영구치 뒤에 숨어 있다. 숨은 이에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새삼 이름이 없어 서운했겠구나 싶었다. 의학 사전을 들춰보면 가운데 아랫니의 명칭은 ‘중절치’다. 뒤에 있는 이는 ‘숨은 중절치’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기엔 혀끝에 가장 먼저 닿는다. 숨은 이가 아니라 제일 잘 느껴지는 이다. 그럼 ‘혀끝치’는 어떨까. 혀에 자란 이 같은 느낌. 신비롭고 징그러워 마음에 든다.
이름을 갖는 것. 이름으로 불리는 것. 누군가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싸움의 동기와 형태는 제각각이라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주체가 소수일 때 치열해진다. 싸움의 치열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무지한 시절도 있었다만.
혀끝치는 송곳니를 반으로 자른 형태라 혀를 세게 움직이면 아릿하다. 혀가 똑바로 안착하지 못하고 살짝 비껴있는 것도, 그래서 입꼬리가 자꾸 내려가는 것도, 혀의 신경이 혀끝치에 닿아있어서 일지 모른다.
> 옥상에 백로가 죽어있다. 도시 한복판인 이곳에 왜 백로가 죽어있을까. 옥상에서도 계단을 가려주는 지붕 위에 쓰러져 있어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다. 흰 비닐인 줄 알았던 나도 가까이 가서야 백로인 걸 알았다.
집에서 촛대와 소주잔의 쓰임은 모두 발아를 위함이다. 수업 때문에 받은 수태지만, 상태가 꽤 좋아보여 촉촉하게 물에 담가 푹푹 꽂아 놨다. 옥상에는 백로가 죽어있는데 옥상 아랫집에 사는 나는 발아를 꿈꾼다. 가끔 모든 게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고, 갈등은 여기서 출발하는 듯하다. 망가진 안경을 몇 주째 쓰는 나도 갈등의 주인공이다. 백로. 어쩌지.
> 일주일에 한 번 문학과 광기에 대한 수업을 듣는데 소량의 미침은 생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짧은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지나 온 자리를 보면 흐릿한 수강생의 발자국으로 정신이 없다. 수태에 붙어 사는 풍란처럼 어딘가 붙어살려고. 다른 난에 비해 꽃이 쉽게 핀다는데 쌜쭉한 나비처럼 생겼다. 미쳐서 잘 키워야지.
>봄이 오나 봐. 진짜 왔네. 식물들 싹 다 물 줘야겠다는 말에 아침 빵부스러기 치우고, 물조리개 들고 기웃거리는데 게리 멀리건을 듣던 동거인이 나를 보니 음악이 전원일기처럼 들린다고. 거울 앞으로 가보니 일용엄니가 집에 있네. 한바탕 웃고 노래진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잘랐다. 집 앞 꽃집에서 산 작은 토분에는 뭘 심든 다 죽는다. 뭘 고민해. 안 심으면 되지.
> 일주일에 두 번 식물 수업을 듣는데 오늘은 수태에 풍란 심기를 했다. 학생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선생님의 질문보다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할 때가 많다. 선인장 모양을 두고 무엇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누군가 열무잎이라고 대답했다. 다 같이 웃어버렸다. 정답은 생선뼈. 다음 주에는 오렌지 자스민과 장미 허브에 대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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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하나의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만원 버스에서 운 좋게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고, 서 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다가 눈이 멈춘 곳은 등받이의 모서리 손잡이를 잡고 있는 굳은 손이었다. 딱딱한 손. 소매로 반쯤 덮은 손등, 곧게 뻗은 손가락이 외할아버지의 손과 비슷했다.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파트 단지의 방역 일을 하시다가 오른팔의 절반을 잃어버리셨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라서 사고 당시의 긴박함이나 고통의 순간을 함께 경험하진 못했다. 할아버지의 오른팔이 장난감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는 걸 자각한 나이가 되었을 땐 의수와 남은 팔의 결합에 잘 적응하신 것처럼 보였다. 살아계실 때 자세한 걸 묻진 못했지만, 선명한 기억은 남아있다. 할아버지의 아침은 팔의 결합으로 시작했다. 거실에 있던 원목으로 만들어진 4단 서랍장의 두 번째 칸에서 의수와 각종 거즈를 꺼내 남은 팔과 합체하셨고, 저녁이 되면 그 서랍에 의수와 남은 거즈를 다시 넣으셨다. 대부분의 일은 왼손으로 하셨다.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때는 꼭 배낭을 메셨다.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할 땐 주말까지 차곡차곡 모았다가 본인의 딸이자 나의 엄마에게 부탁하셨다. 엄마의 손글씨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는 온전한 오른손이 있는,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글을 쓰다가 숨이 탁- 하고 막힐 때면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눈으로 구멍이라도 뚫을 것처럼 강하게 힘을 줘 쳐다보면 뭔가 번뜩하고 지나간다.
‘정신 차려야지.’
싶은 순간이다.
이미 뭔가 지나갔다. 그럼 그건 일어난 일이 되는 거다. 할아버지의 그 날도 그랬을까. 돌아가신 지 13년째. 이제서야 자세하게 상상한다. 끔찍하지만, 당사자의 아픔만큼 끔찍할까. 그럼 또 그건 아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여름이 오면 동네 곳곳에 하얀 연기를 내뿜는 방역 트럭이 오간다. 구석구석 왔다 갔다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 연기가 사방을 뒤덮고, 진한 냄새가 옅어질 때쯤 하얀 연기도 흩어진다. 지독한 약품 냄새보다 먼저 떠오르고, 휘발되는 건 할아버지의 오른팔이다.
> 그 예전에 내가 고딩일 때 인터넷 방송부였는데 원예부에 있는 애들은 되게 지루한 애들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 애들이, 이제 와서 부러운거야. 그 예전에, 그 혜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질투가 나더라고. 그 기쁨을, 그 예전에, 그 나이에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질투가 나더라고. 원예부 애들은 식물을 키울 동안 나는 인터넷 방송 만든다고 PC 앞에만 앉아있었거든. 아무 것도 안 하고. 나는 매일 무엇에 질투를 할까 찾으면서 사는 사람같아. 오늘은 고딩 때 원예부 애들이야.
> 아침에는 멸치로 육수를 낸 물국수를 말아 먹었고, 점심에는 아침에 먹었던 물국수를 다시 말아 먹었고, 서너시쯤 시내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췄다. 바글바글한 안경점에 의자 두 개 차지하고 앉아 삼삼오오 짝진 사람들을 둘러봤다. 지갑을 열었다 닫기도 하고, 전화기를 보기도 했다. 나처럼 혼자 온 남자는 점원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했는데 점원의 표정, 말투, 행동은 어느 한계점에 다다른 듯했다. 저녁에는 토마토를 끓여 만든 소스를 뿌린 애호박 스테이크를 먹었다. 버스나 전철에서는 노트를 꺼내 예전에 적어 둔 몇 개의 글귀를 반복해 읽었다. 그들 중 1999년 10월에 한강 작가가 쓴 수상 소감도 있었고, 2010년 크리스마스에 아무개가 나에게 써준 편지 내용도 있었고, 김정환이 쓴 술자리의 시인 최승자 이야기도 있었다. 아주 가끔 미래지향적인 명언도 있었다. 안경은 마음에 들고, 노트는 꼭 맞는 것들로 차고 있다. 물국수는 내일 아침에도 먹을 수 있다. 가장 좋았던 때를 생각한다.
> 일요일의 응급실은 묘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동료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천천히 둘러봤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단다. 당장 내일모레 출국인데 이곳에서 수술할지 모국에서 수술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돌아가 수술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의사는 임시방편으로 시술을 하고 있었고, 그 사이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한 분이 오른손가락을 휴지로 둘둘 말아 급히 뛰어 들어오셨다. 주방에서 강판을 갈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한다. 바닥에 피를 뚝뚝 흘리며 느긋한 의사를 기다리는 사이 어린 남자아이는 울상이 되어 아버지와 들어왔다. 그 아이도 팔이 부러져있었고 심각한 아이에 비해 아버지는 냉랭했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동시에 또 다른 아주머니는 접수대 간호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한마디였다.
“어디서 니가 날 정신병자 취급이야?”
> M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옆집 순이네 이야기처럼 내게 전달한다. 신통방통하다. 양쪽 베란다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가장 큰 방의 바닥에 누워 이야기를 듣는다. 오필리아가 어쩌고, 햄릿이 어쩌고, 저쩌고. 약하게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이 다리 밑으로 들어온다. 초여름의 기분이다. 카페인이 없는 가루 커피를 진하게 풀어 얼음 다섯 개 넣고 차갑게 만들었다. 세무서의 일도, 구청의 일도, 도서관의 일도 다 번거롭다. 점심으로는 어젯밤에 만들어 놓은 꽁치 김치찌개와 라면 하나를 끓여 먹어야지. 새 컴퓨터가 생겨서 좋고, 컴퓨터가 생긴 뒤로 컴퓨터만 보는 것은 싫고, 주방에 있는 노란 꽃이 좋고, 홍콩야자가 시드는 것은 신경쓰인다. 정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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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신호대기중에 보이는 풍경을 빠르게 적는다. 검은 단발머리에 앞머리가 있고, 옅은 하늘색 핀스트라이프 코튼 셔츠와 검은 슬랙스, 검은 양말, 베이지 톤의 운동화, 새신발같진 않다. 얇은 체인이 달린 작은 가죽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붉은색 가죽 케이스를 씌운 휴대폰을 왼손으로 쥐고 있다. 혼자 걷는, 이어폰을 낀, 젊은 여자만 공략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내 옆에는 화장을 고치는 사람이 있다. 손놀림이 빠르다. 덥고 습하다.
>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잘 참으시다가 영정사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셨다. “경자야, 네가 먼저 가면 어쩌냐, 경자야.” 이모할머니의 영정사진에는 평소 잘 지으시던 표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향을 피우고 나란히 서 두 번 절을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상주와 한 번 절을 하고 주저앉으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건넛방으로 갔다. 몇 년 동안보지 못했던 외가 식구들이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식사를 끝낸 뒤였다.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릴 적, 증조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을 때 이모할머니의 것도 함께 받았었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며칠 밤을 자며 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불평하지 않았고, 불편하지 않았다. 이모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하느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염이 끝나고 그 어떤 고인의 방보다 우렁찬 찬송가 소리가 이모할머니 방에서 울려 퍼졌다. 문득 내가 끼고 있는 은반지의 나머지 한 짝이 궁금해졌다. 본래 쌍가락지인데 하나는 증조할머니가, 하나는 이모할머니가 갖고 계셨다. 4년 전,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 은반지는 내가 받아 끼고 다녔다. 나머지 하나, 이모할머니가 끼시던 반지는 누가 가져갔는지 궁금해졌다.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었지만, 반지에 관해 이야기하진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후덥지근하더니 장지를 떠나는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다 나으면 미국에 있는 딸에게 가겠다고 하셨단다. 임종 삼십 분 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잘 살아라, 하느님 잘 믿어라, 아이들 잘 키워라, 나는 간다.”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저승이 무엇인지.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상복 입은 사람들, 고스톱 치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돈을 쉬는 사람들을 본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 타고 있는 열차는 퇴계원역에서 일어난 낙뢰 사고로 인해 사릉역의 중간쯤에 멈춰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낙뢰 사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금방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출발이 지연된다는 네 번째 방송이 나올 때 다 읽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꺼냈다. 다섯 줄을 읽다가 생각만큼 읽히지 않아 가방 위에 올려놓고 애인과 노닥거리는 옆사람을 흘깃 봤다. 퇴계원역이 아니라 내가 낙뢰를 맞은 것 같다. M이 보고싶다. 얼른 가서 안아줘야지. 내가 맞은 낙뢰를 나눠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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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낭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다 낭만의 뜻이 무엇인지 잊었다. 이렇게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 될 때 낙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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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섬세한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목소리가 크고 굵어서 종종 화가 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지만 삼십 년 넘게 겪어본 바에 의하면 화를 잘 내거나 악의가 있는 성격은 아니다. 내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건 아빠의 모든 형제가 비슷하다는 데 있다. 엄마의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섬사람이라서 행동도, 표현도 세다는 거다. 아빠는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지금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울 사람인 엄마와 결혼해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아빠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는 모두 제주에 사셨기 때문에 억양과 표정, 목소리의 크기가 그대로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요즘 다시 제주의 형제들 같다. 호르몬의 변화나 나이 앞자리 수의 변화가 아빠를 종종 슬프게 하는 것인지, 화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자주 만나고,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정도다. 아빠의 기분에 전염된 엄마의 넋두리를 방패 없이 듣는 건 덤이다. 이번 주 주말도 나의 몫을 다하고 방전이 되어 일요일이 지나기 전 도망치듯 서울로 간다. 도망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역까지 태워주는 아빠는 가방 어딘가를 뒤적이더니 미지근하지만 가면서 마시라고 음료수를 건네준다. 아빠를 미워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빠라고 내가 미웠던 순간이 없었을까. 돌아가는 길이 가장 복잡하다. 내 자리로 돌아가면 새까맣게 잊어버릴 울렁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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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에 막걸리를 한가득 싣고 가는 아저씨를 마주쳤다. 보풀이 난 목도리를 머리에 칭칭 감고 여러겹 겹쳐입은 탓에 빨간 니트 겉옷이 땅땅해보인다. 콧물을 옷깃으로 닦으며 리어카를 앞으로 밀고가는 아저씨를 향해 P는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외쳤다.
“아저씨! 막걸리 한 병 얼마예요?”
“한 병에 삼천 원, 두 병에 오 천원이요!”
“한 병 주세요. 이거 이동막걸리죠?”
“네네. 아시네요. 누워서 보관하지 마시고, 냉장고 시원한 곳에 세워서 보관하세요. 잠시만요. 거스름돈이...”
2017년 12월 한파가 몰아친 겨울 아주 늦은 밤에 막걸리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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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될 것 같아.”
꿈 속에서 외쳤다. 기분이 왠지 그렇게 흘러서 즉석 복권을 샀다. 로또 번호를 체크해야 하는 사람을 위한 책상 앞에 앉았다. 이 자리만큼 누군가의 간절함이 베어있는 곳이 있을까. 지갑에서 오백 원을 꺼내 긁었다. 나의 숫자와 행운의 숫자가 일치하면 당첨. 오천 원 당첨되었다. 복권 집에서 나와 떡볶이를 사 먹었다. 오늘 꿈에는 “복권에 당첨되었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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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좁은 골목에는 네 평 남짓 작은 분식집이 있다. 라볶이가 맛있기로 유명해서 어느 시간에나 꼭 손님이 있다. 그곳에는 세 분의 아주머니가 만들고, 갖다 주고, 치우는 역할을 분담하는데 세 분 중 두 분(만들고, 갖다 주는)은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근처 가게 주인들의 험담이다. 오늘은 바로 옆 슈퍼와 옷 가게 주인이 주인공이다. 슈퍼는 장사는 잘 하는데 사기꾼 같다고. 특히 옷 가게 주인을 두고 무섭게 이야기하더니 백여시로 마무리 지었다. 좁은 공간에서 매서운 대화가 오가는 모습에 괜히 반찬을 남기면 젊은 것들이 아까운 줄 모른다고 욕할까 봐 깍두기 세 개, 단무지 두 개를 꾸역꾸역 다 먹고 나왔다. 그리고는 길을 걷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생각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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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응~ 나야 나 오늘 밑에서 우리 밸리 단스 회원들하고 모임이 있어서~ 응~ 근데 집에 밥이 하나도 없어 응~ 그래서 밥이 없어서 응? 괜찮아? 홍홍 알아서? 응 그래서 집에 올라가서 밥만이라도 얼른 하고 내려올까 했지 응~ 알아서? 진짜? 응~ 지금 어느 역이야? 으응~ 아직 멀었네 그럼 알아서 챙겨 먹어요~ 응~
밥.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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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리에서 가정리로 넘어가는 이차선 도로에서 자라섬을 만났다. 넓고 조용한 강 위를 떠다니는 오리 두마리가 우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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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에서 을지로4가까지 역사 안으로 걸었다. 걷는 길에 여러 종류의 다방과 스낵 가게들을 봤다. 주인은 모두 50대, 60대 사이의 여자, 손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들. 계중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인쇄된 서류 뭉치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외할아버지가 저런 부류의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억지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 사기꾼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외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 개새끼. 나지막이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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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우동집에서 기본 우동만 먹다가 튀김 우동을 시킬 때의 그 호사스러운 기분이란.
> 감당하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나와 동료는 커피숍에 앉아 “우리 5분 동안 일 얘기하지 말자”해놓고 30초간 불안하게 눈동자 굴리다가 “그런데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는 순간. 그래 그냥 일하자.
> 마을버스에서 마주친 아래층 아주머니께 이사 소식을 전했다. “아주머니 저희 3월에 이사 가요.” 아주머니는 아주, 많이 아쉬워하셨다.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말씀도 하셨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집 와이파이를 함께 사용하고 계시는데 우리보다 와이파이가 더 아쉬우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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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가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식식거리며 문을 열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앞에 가던 차가 거슬렸는지 스타카토 크락션을 선보이더니 정말 앞차를 향해 가는 것일까? 어라? 뒤로 가네? 아랫도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뒤로 간다. 뒤로 뛴다. 아 급하셨구나. 그래서 그렇게 누르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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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프란체스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성당의 모든 것이 좋았다. 높은 천정, 대리석으로 쌓은 벽들, 반짝 빛나는 묵주알. 성당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착각까지.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학교에서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이 되면서 종교는 신의 말을 빌린 사람이 운영하는 단체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매주 다니던 성당도 각자의 집이 생기며 발길이 끊어졌고, 길을 다니다가 성당이 보이면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바깥에서 보니 선명하달까. 누군가 꾸며놓은 신성함을 유리알처럼 너무 소중해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아픔을 온전히 기대고 싶어 하는, 구원받지 못하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 고등학교 동창에게 청첩장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고민거리는 비슷비슷하고 탈출구 없는 생활의 연장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각자의 비상구는 있다. 드러내지 않을 뿐. 나의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그 걱정만 했다. 오랜 시간 친밀했던 친구였는데 더 이상 그 친밀함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서운했다. 각자 삶에서 강하게 살아남길.
> 예전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친구의 가방을 잠가주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그 친구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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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역’C’ 커브로 향하고 있다는 나의 목 상태를 보고 경각심을 느끼기 위해 컴퓨터 옆에 필름을 붙여놨다. 이틀째 고개는 왼쪽 어깨 방향으로 기울어있다. 아픈데 자꾸 웃음이 난다. 종종 누가 나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픈 날들이 있었는데 그게 다 목 때문이란다. 심지어 목이 머리를 온전히 다 받치고 있어서 근육이 생겼다고. 덕분에 며칠 동안 자체 휴가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을 만지작만지작거리는 정도. 돌이켜보면 탈장 수술을 했을 때, 염증 제거 수술을 받았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던 시간이 죄책감 없이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 나에게 미안하다. 결국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데 처음 갔던 정형외과 핑클펌 의사의 20주 동안 진행하는 로봇 치료 프로그램을 받았더라면 목이 제자리로 돌아왔을까? 무려 200만 원인데. 내심 궁금해진다. 그 병원에서 가져온 건 X-ray 필름 두 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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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아래 산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집을 일 년 동안 우리 손으로 뜯고, 부수고, 자르고, 붙이고, 칠했는데 제일 중요한 단열을 빠트렸다. 미친 더위에 당하고 아뿔싸. 겨울에는 정말 춥겠구나. 단열재 14장을 자르고, 붙였다. 하루가 다 갔다. 답답하거나 갑갑하거나 긴 통화를 해야 하거나 애들의 짧은 산책을 위해 옥상에 올라간다. 앞으로는 원효 사거리가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용산역과 호텔 몇 개가 보인다. 사거리 쪽을 바라보면 불법 유턴이나 신호 위반하는 차들을 볼 수 있다. 죽기 전에 면허 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작은방 단열을 마치고, 쉬는 동안 오랜만에 <해피투게더>를 틀어놨다. 스물에 봤던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딱 하나, 아휘가 이과수 폭포에 있던 그 장면. 푸르스름한 그 장면만 남아있었다. 시기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이나, 영화, 음악이 있다는 게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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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초등학교에서 투표하고, 조용한 집에서 저녁을 기다린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둔 에어컨 설치 기사가 결국 설치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벌써 두 번째다. 그들이 원하는 설치 비용을 지불하면 에어컨은 바꿀 수 있는데 다들 7층에 올라오면 1층에서 말했던 비용을 까먹는지 몇 배의 추가 금액을 요구한다. 오늘도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각자 위치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옥상의 바로 아래층이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배송을 신청했다. 배송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1층에 도착했다고 해 내려갔다. 생수, 휴지, 두유, 닭가슴살, 카레, 미숫가루, 오곡 쌀. 수위실이 있는 2층까지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기사는 매우 좋아했다. ‘7층까지 안 가도 되는 것이구나’ 싶은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생수를 고정하는 끈이 4층에서 끊어졌다. 괜찮다. 양손으로 들면 되니까.
옆집 할머니는 집 안의 쓰레기를 복도에 내놓는 걸 좋아하시고, 앞집 할아버지는 정체 모를 물을 복도에 잔뜩 찌끄리는 걸 좋아하신다. 앞집 할아버지의 옆집 아주머니는 마주쳐 인사하면 매우 부끄러워하신다. 독특한 7층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면 선거 결과가 나와 있겠지. 사실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그렇다고 오답이 확실한 곳에 도장을 찍을 순 없으니 찍는 순간까지 오래 걸렸다는 것만 사실이다.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보이는 호텔의 객실 투숙객 현황을 확인한다. 기준은 불이 켜져 있는 방의 수. ‘음 오늘은 많이 머물다 가는군’ 하는 식의 생각. 며칠 전, 호텔 근처의 4층 건물이 붕괴한 사건 이후에는 ‘저 호텔을 지을 때 많이 흔들렸을 거야’라는 생각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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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후루룩 먹고 급하게 달려왔는데 타야 하는 제주행 비행기는 1시간 후에 출발한다. 지난주 주말, 아빠와 엄마의 살림살이를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사할 때마다 느끼지만, 사람 한 명이 보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갖고 있어야 하는 ‘무언가’가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 싶다. 짐을 챙기는 동안 버릴지 가져갈지 정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언니에게 “나에게 묻지 말고 니가 판단해서 다 버려라”라고 말했는데 문장이 너무 완벽해서 픽 웃었다.
이 집에 오면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 시절에 머무는 듯하다. 기록된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모두 어리고, 젊을 때다. 내가 이랬지, 아빠는 정말 젊었어(나랑 진짜 닮았어)오늘 제주에 가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모습을 봬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보다 아빠의 마음이 궁금하다. 서른둘의 아빠 사진을 보고, 육십을 바라보는 아빠가 엄마를 보내야 하는 마음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공항은 언제나 분주하고, 밝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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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세탁소에서 세탁물 건조하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 남성복을 전공한 나는 내 옷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각종 주머니를 보고 경악했던(있어서 놀랐다기보다는 이걸 다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경악) 것이 떠올랐다. 그 이후 남성 코너의 옷을 주로 사 입는데 주머니 때문은 아니고 태초부터 벙벙한 패턴으로 변형이 시작되는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그들의 물리적인 힘도 부러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가구를 7층으로 옮겨야 한다거나 뭐 그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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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집에 들어와 김치 청국장 재료를 냄비에 던져 넣고 끓이는 동안 어슐러 르 귄의 부고 기사를 읽었다. 글쓰기 공부하려고 샀던 첫 책이 그녀의 것인데 괜히 펼쳐보고, 닫았다. 오늘도 여전히 빈틈없이 춥다. 보일러 빵빵하게 틀고 다음 달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놀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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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요새.
올해 나는 덜 발발거리기 위해 늦잠을 잤다. 아침 겸 점심으로 룸메이트가 만들어 준 김치 떡만둣국을 먹고 올해의 첫 커피를 마셨다. (원두가 동이 나 이틀 동안 마시지 못했다) 드디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드디어!
2016년부터 성가신 꼬리처럼 붙어 다녔던 고민을 털어버렸다.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곧 두 번째 책이 나올 테고 아베크의 일곱 번째 무언가도 시작할 힘이 생겼다. 아름다운 물건을 모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상점도 만들고 있다. 내게 활기를 찾아 준 도잠의 일은 새해에도 계속 되길 바라고, 무엇보다 올해에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다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슷한 형태로 자주 위치가 바뀌는 책상은 새해를 맞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왼쪽에 있던 액자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에 있던 모래시계는 왼쪽으로, 앞에 나와 있던 연필꽂이는 살짝 뒤로, 엄마에게 받은 묵주함은 모니터 앞으로 나왔다. 만년필 세 자루는 묵주함 뒤로, 두 개의 문진 중 짧은 문진만 앞쪽으로 옮겼다. 모니터 하단에 붙어있던 종이 몇 장은 찢어버렸다. 작년의 다짐인데 올해에는 해당이 안 된다. 사용하는 노트는 한 권 늘었고, 아마도 오른쪽 노트 자리에 합류하게 될 듯. 액자 앞에는 빨간 테 안경을 쓴 Little Miss Busy가 수전 손택 전용 책꽂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액자 앞의 그림 속 나의 시선과 비슷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각자의 요새에서 모두 잘 살아남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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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여름 사진을 찾아본다. <곡성>과 <옥자>의 숲 사이를 오갔던 올여름 산책로는 꽤 만족스러웠다. 내리막길에서 무릎이 찌릿할 때도 있었는데 아직 뭐 그렇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름에는 초록빛이 풍만해서 여름에 찍힌 사진이 좋은데 이상하게도 이 사진은 흑백 필름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은 정은지 씨가 찍어줬다. 산책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하다 보니 그녀의 카메라 앞이 가장 편하다.
오랜만에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노고지리의 ‘찻잔’을 LP로 들었다. 산울림 버전보다 도입부가 강렬해 좋았다. 역시 마무리는 김추자였고, 돌아올 친구 생일에는 질 좋은 LP 한 장을 선물해야겠다. 이 정도면 풍족한 연말.
겨울에 두 사람이 떠났다. 매해 겨울이 되면 HJ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고, 며칠 전 투병의 문턱에서 이르게 떠난 JM언니가 생각날 것이다. 앞으로 생의 축복보다 이별의 아픔을 느껴야 할 횟수가 더 많겠지만, 힘껏 슬퍼하고 떠난 사람을 잊지 않는 게 남은 사람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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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집 앞이 눈으로 쌓여있어 빗자루를 들고나왔다. 약간 땀이 날 정도로 쓸다가 뒤돌아 내가 쓴 자리를 보는데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아하는 언니와 나를 두고 아빠는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매번 세검정 언덕을 다 쓸고 들어 오셨는데 그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다행히 이곳 언덕에는 열선이 깔려있어 집 앞만 슬렁슬렁 쓸면 된다. 열선이 안 깔려 있었으면 아빠 마음 알기 전에 힘들어서 욕부터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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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8시 34분. 이미 만취한 아저씨는 주절주절 대며 버스에 올라탄다. 카드를 찍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기사에게 변명한다. 기사는 낮은 목소리로 카드 찍으시라 말한다.
삑- 카드를 찍고 돈이 나가는 소리. 만취 아저씨는 돈이 나갔다며 투덜댄다.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에서 같이 흔들리니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다. 취한 사람.
양평에 사는 친구가 또 한잔하자고 해서 다시 버스를 탔는데 돈이 나갔다고 투덜거린다. 아무도, 기사도, 승객도, 아무도 만취 아저씨를 쳐다보지도, 대꾸하지도 않는다. 이 버스에 없는 사람. 냄새만 남은 사람이다. 다시 기사에게 가 두 정거장 뒤에 세워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버린다. 술이 몸을 조종하는 만취 아저씨. 아저씨 말대로 두 정거장 뒤에 기사는 문을 열어줬지만, 만취 아저씨는 알까? 두 정거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취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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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상 앞에서 마셨던 커피 컵을 치우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책상 앞에 앉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잠을 잤지만, 다른 나는 밤새 책상 앞에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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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빠른 속도로 건널목을 건너다가 도브 라운지(dove lounge)에 있던 비둘기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응가를 제대로 맞았다. 며칠 전, 같은 자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후드득’ 소리에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두둑’ 정수리에 맞았다.
지난주에 산 책의 비닐을 아직 못 뜯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비닐을 뜯겠다는 결심의 시간이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책방에서 머무르며 고른 책인데 손이 안 간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먼저 읽던 책을 다 읽으면 구매하거나 너-무 스트레스가 심한 날 구매한다. 그리고 가진 책 중 한 권을 골라 중고로 판다.
밤이 싫다. 밤이 없는 삶을 원한다. 여름이 싫고, 겨울이 좋았던 예전의 나는 겨울이 싫어졌고, 여름은 잘 모르겠다. 밤은 여전히 싫고, 낮은 좋다. 아침은 더 좋고, 시끄럽게 떠드는 새는 더 좋다. 내 머리에 똥 싼 비둘기 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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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수어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잡스러운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배워야 하는 양이 많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앞에 나가 가족 소개를 했는데, 수어를 할 때 내 의지대로 목소리를 잠글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8월까지 듣는 이 수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농인에게는 일반 이름과 달리 시각적으로 보이는 수화 이름도 있는데 (예를 들어 얼굴이 둥근 여자, 눈이 작은 남자 등) 최땡땡은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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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 숲속 산책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 끝자락으로 가면 숲과 연결되어있는 작은 길이 나온다. 길은 두 방향으로 나뉘어있다. 왼쪽으로 가면 아랫동네 공원과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네 호텔의 뒷문,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다. 새소리 간혹 까마귀 소리가 위협적일 때도 있지만, 흙길을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르막을 오를 땐 땀이 나지만, 좀 개운한 기분이 든다.
<곡성>을 본 뒤 산책할 때는 영화 속 기운이 현실까지 침투해 며칠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무명이나 일본인이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옥자>를 보고 걸었더니 스산했던 숲이 다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며칠 동안 숲은 옥자의 숲처럼 느껴질까. 아무래도 스펀지 같은 삶이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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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에 빠지면 책상 구석에 있는 라이터를 켜본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흰 버튼을 누르면 작은 불꽃이 위로 쑉 올라오는 게 꼭 마술 같다. 버튼을 누를 때 들리는 딱- 소리도 무력감을 환기하는 것 같고. 오늘 동네 산책을 하다가 거대한 담금주 두 병(병이라고 하기에 너무 큰 병)을 보고 몰래 찍는 나를 보던 동료가 "너 나이 들면 거실 벽에 저런 병 가득 만들어놓을 것 같아"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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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재가 실린 신문을 샀다. 처음이다. 매번 신문사 사이트에 올라오는 것으로 확인을 했는데 마지막이라니까 사야 할 것 같았다. 매달 한 번 실리고 그 와중에 특집 기사 있으면 한 주 밀리는 그런 기사였다. 입맛대로 쓰기에는 실력이 부족해서 꼭 따뜻한 청년의 시선이 담긴 그런 글을 써야 했다. 신문도 사고, 오랜만에 마트에서 장도 봤다. 장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감을 잃었다. 야채 코너만 세 번을 왔다 갔다 했다. 계란과 두부 아주머니의 호객행위가 다시 멋쩍다. 오늘 저녁엔 삼겹살을 굽고, 엄마가 말려준 표고버섯, 미나리, 지난 주말에 같이한 김장김치를 먹어야지. 엄마가 그랬는데 나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하신단다. 누가 뭐래도 먹는 건 안 까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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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혼자 다니고, 혼잣말을 자주 하고, 누군가의 미래를 볼 줄 안다는 친구가 있었다. 다들 피했던 그녀와 짝꿍이 되어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는 내게 수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개의치 않았다. 종종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나 곡명을 추천해줬는데 그때 자미로콰이를 알게 되었다. 이름도 또렷이 기억나고,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데 어떤 계기로 대화가 끊겼는지 기억이 없다.
졸업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곳은 삼 년 전 남산 공원 입구다. 나는 버스 안에 있었고, 그녀는 고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 허공을 보며 걷고 있었다. 늘어진 반소매 티셔츠, 무릎이 나온 면바지, 구겨 신은 운동화. 이상하게도 자미로콰이보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에 나오는 자흔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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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타인의 행동이(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상점 안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오늘 저녁에는 신호에 대기 중인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탁을 맡겼던 와이셔츠 두 장을 찾아 승용차에 올라타는 젊은 회사원의 모습이 그랬다. 귀가하는 길인 듯 보였다.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풍족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느낌도 아니었다. 이런 느낌들이 나를 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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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은행을 넣은 흰 쌀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스팸을 굽고 해초 무침을 먹어야지. 이 생각을 하고 나니 일이 손에 잡힌다.
> 우체국에 가서 팩스 한 통 보내고, 점심으로 먹을 파스타 재료, 저녁에 먹을 된장국 재료를 샀다. 마늘값이 너무 올라 그나마 싼 깐마늘 한 봉지를 샀는데 통마늘로 살 걸 괜한 후회가 든다. 엄마라면 깐마늘은 안 샀겠지. 이런 생각 때문이다. 가벼웠던 장바구니가 재료들로 차서 들기 좋은 무게가 되었다. 조금 걸어 집에 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라 문자를 남기고, 햇볕이 뜨거워서 챙겨 나온 짙은 남색 모자를 눌러썼다. 정류장에는 버스가 언제 오나 도로 쪽으로 고개를 내미는 양산 쓴 할머니 한 분과 나만 앉아있다. 뒤로는 휴대전화 대리점이 있는데 감정 없는 성우 목소리로 녹음된 통신사 광고가 나오고 있다. 이제야 바람이 분다.
>지난주에 마감한 원고가 신문사 웹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확인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러 내려간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조용한 동네를 가로지른다. 내가 신은 슬리퍼의 소리만 들린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먼지가 잔뜩 낀 하늘. 암울했던 일 년.
>
지옥 불구덩이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 같았던 7월의 마지막 날.
>조카를 만나는 날이면 작은 일이라도 깨우치는 순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간식과 노래였다. 조카의 젤리는 내가 어릴 땐 금지된 간식이었다. 한 봉지 가득 들어있는 젤리를 나눠먹으며 조카보다 빠르게 (맛있는 맛을 골라) 먹는 자신을 발견, 지나친 금지의 결과는 폭주하는 사람이라는 깊은 깨우침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는 율동을 노래에 맞춰 추는데 두어 번은 흘려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심상치 않아 찾아봤다. ‘문어의 꿈’. 귓구멍을 후벼파고 들어도, 다시 들어도 근래 들었던 노래 중 가장 춥고, 외롭다. 뭐야 이런 노래를 왜 어린이집에서 알려주는 거야 그러다가 그냥 나도 서른몇 살 어린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조카어린이가 이모어린이의 구슬픈 마음을 알려면 몇 겹을 더 살아야 하는가. 그런 이야기.
> 불안할 땐 냉장고에 있는 야채 몇 가지 손질해서 솥에 넣고 푹 찐다. 불린 병아리콩 넣어 만든 현미밥, 끓는 물에 8분 삶은 반숙 계란과 먹으면 올라왔던 불안도 싹 가신다. 상담쌤이 수면과 식욕에 대해 물으셨는데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다고 대답했다.
> (꿈) 어젯밤 전철에서 중학생 소년과 난투극을 벌였다. 역 두 개가 지나갈 동안 나름 거친 싸움이었는데 졌다.
(현실) 밀린 수업 듣고, 동네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셨다. 셀린 시아마가 각본을 썼다는 영화를 봤고, 주인공이 변덕을 부리면 끝까지 보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았다. 월드컵은 관심 있는 경기만 챙겨보고, 카타르와 세네갈 경기의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다.
> 방울토마토 한주먹 송송 썰어 올리브유에 볶다가 계란 두 개 곱게 풀고, 후추 솔솔 뿌려 같이 볶으면 아름다운 한 접시 완성. 아침, 저녁으로는 청도에서 나고 자란 씨 없는 감 하나씩 먹는 호사를 누린다. 먹는 게 최고다.
> 그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서 막 나온 아주머니가 하늘을 보더니 “하늘 꼬라지가 내일도 덥겠네"하는 말을 들었어. 하늘이 노랗고, 빨갛고 그랬거든. 앞으로 그런 하늘을 보면 ‘다음 날 더울 꼬라지네'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어제 진짜 더웠거든.
<베겟머리 서책>을 펼쳤는데 그 아주머니가 떠오르는거야. 이쁘다고 생각한게 맥 빠지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거든.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조르주 페렉인데 몇 권에 걸쳐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걸 이야기해. 그래서 오랜만에 조르주 페렉 책도 뒤적거렸어. 아주머니 덕분에 날씨 점치는 법도 배우고, 책도 읽었네. 그럼 이제 할 일을 해볼까?
>
두 번째 책이 절판되었다. 2쇄까지 꽉 채워서 끝. 아침에는 농산물꾸러미와 커피 한 잔 반을 들이키고, 점심에는 점괘가 들어있는 차 한 잔. 점괘 보려고 매일 한 잔씩 꼬박꼬박 마신다. 모든 성실은 집착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
원고를 정리하다가 오토바이 사고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 때문에 생긴 오른손 상처는 이게 상처인지 주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려졌고, 기억도 두툼한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퇴원하고 먹은 짜장면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맛있었어 그 짜장면. 그 집 오토바이에 치인건데!
>작업실 아래층에 드럼 학원이 있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늦게 와서 치는 사람은(동일인 같음) 콜드플레이 부류의 곡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서글프다. 구간반복 중독자 같은데 계속 서글프다가 간다. 더우니까 더 슬퍼.
집의 큰방 창을 열면 보이는 빌딩 공사가 거의 끝나간다. 건물 뒤편의 바닥 타일 시공은 2인 1조로 착착 진행 중이다. 낮의 더위는 욕이 튀어나올 정도니까 저녁 7시부터 밤늦도록 조명 하나에 의지해 작업을 이어간다. 작업자1이 삽으로 접착제를 퍼서 바닥에 퍽- 내려놓으면 작업자2가 쌓아놓은 타일을 하나씩 붙인다. 완공 후에도 창문을 열면 타일 시공팀이 생각날 것 같다.
새잎이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황칠이가 새잎을 세 개나 만들었다. 막실라리아 꽃 이후로 소리를 질렀다. 지난주 퍼부은 장대비와 습도 때문에 서울을 자생지인 제주로 착각했나 보다. 세 개가 웬 말이야. 하나만 튀어나와도 기절할 판에!
>잠을 잘 자는 나에게 불면의 밤이 오면 궁여지책으로 라디오를 아주 작게 틀고, 잠을 기다린다. 듣는 라디오 채널은 딱 하나라서 선택의 괴로움은 없다. 새벽 시간에는 낮에 했던 방송이 다시 나온다. 좋아하는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방송이 나오면 목소리를 듣느라 소리를 조금 키우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잘 들으려고 집중하면 금세 잠이 든다. 오늘이 그런 밤이다.
>주기적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꿈을 꾼다. 문이 열리지 않는 건 기본. 위아래, 옆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제는 용산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대학로에서 멈췄다. 이 정도면 전철이라 생각하고 덜 무서워하면 좋겠지만, 꿈속의 나는 바보라서 엘리베이터가 옆으로 움직인다며 운다. 대학로에서 내리면 거리의 모습은 충무로다. 와중에 비도 내리고, 길을 걷다가 용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보지만, 없다. 잠에서 깨면 안도의 숨을 쉰다. 몇 년 전 병원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경험이 끊임없이 쫓아다닌다. 벗어나고 싶다.
>
불어 터진 라면과 설익은 만두 두 개.
>‘애인’과 ‘연애’
두 개의 단어가 주는 단물이 모두 빠진 지금이 이 연애의 진짜 시작점이 아닐까. 모든 기대와 두근거림이 세탁기 물 빠지듯 다 빠진 상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자주 싸울 수밖에 없다는 어떤 박사의 진단이 나의 마음을 만진다. 이 이야기를 오늘, 순천향병원에서 양재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H와 나누었다. H는 본인의 낮은 자존감이 모든 만남에 걸림돌이 된다고 했고, 나는 쌈닭 같은 성격이 지금의 연애에서만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가슴이 뻥- 뚫리는 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애인이 있어도 채워질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다.
> 아침에는 급한 일이 있어 세수도 못 하고 용산역에 다녀왔다. 마무리하고 들어와 라디오를 틀었는데 마침 랑랑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오네. 여유롭고 낭랑한 피아노 연주가 다 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물건의 위치를 여기서 저기로 자꾸만 옮긴다. 오늘은 작은방에 있던 책장 하나를 큰 방으로 옮겼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시집, 노트만 꽂아놓은 책장. 좁은 이 집에서 제일 바쁘게 움직이는 듯하다. 아침 라디오는 그랬고, 지금은 춘향가 중에서도 ‘이별가’가 나오네. 오늘 해도 빌딩 뒤로 숨고, 마감은 여전히 진행중, 로딩중, 준비중중중.
>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쌓이다 보면 집 잃은 똥강아지처럼 다리를 달달달 떨게 되는데 요 며칠이 그랬다. 어딘가에 ‘담대함 좀 나눠 주세요 좀!’ 하고 빌었던 게 16년인가 그랬는데 아직도 나눠 받지 못한 걸 보면 상대도 줄 마음이 없는 건가 싶다가 괘씸했다가 그런다. 겨울에는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봐야 한파인 걸 안다. 춥다는 핑계로 며칠 작업실은 등지고, 집에서 일하는 와중에 눈이 많이 내렸길래 옥상에 올라갔다. 작년 봄에는 백로가 죽어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팬케이크도 계란말이와 비슷해서 잘 되는 날에는 잘 되는데 안 되는 날에는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안 된다. 오늘은 잔뜩 화가 난 팬케이크를 먹었다. 아침, 점심에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둥굴레 한 잔을 마셨다. 먹고, 마시려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데 사이사이 티 안 나게 노는 시간도 많아서 더딘 기분이다. 더디고 된소리 나는 기분 알랑가 몰러.
>여차저차 번거로운 일이 생겨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CCTV를 봤다.(누구나 볼 수 있다) 조금 부풀려 네 시간 정도 같은 자리에서, 오며 가며 지켜봤다. 번거로웠던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곳저곳을 눌러봤는데 처음에는 살았던 동네, 자주 다니던 동네, 좋아했던 동네를 훑고. 다음에는 모르는 동네(흥미가 떨어진다)를 보다가 몇 장면은 순전히 재미로 적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 새벽 1시 동교동 삼거리 지나 왕복 8차선을 무단횡단하는 사람, 신문배달부가 뛰다가 신문 떨어트리는 장면, 무려 여섯 사람이 모여 한참을 떠들다가 차를 타고 떠나는 과정. 그러다가 손가락이 한동안 멈춘 곳은 동호대교였다. 구리 방면으로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반짝 빛나는 게 어찌나 이쁜지. 도로 위 차들이 줄지어 달릴 때 드는 생각은 - 어디로 가는 걸까. 집으로 가는 걸까. 목적지가 있으니까 달리겠지. - 달리는 차만큼 줄지어 선다. 거 참 되게 이쁘네. 가로등 빛이 한강물에 비치는 것도, 달리는 차의 쌍라이트도, 저어 머얼리 보이는 도시 불빛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딱 그 정도. 연말이라 그런가. 마음이 호수처럼, 경계선 명확한 호수만큼 넓어진다.
>옆집 할머니의 기상시간은 오전 6시 언저리. 일어나셨는지 알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와 웃으며 통화를 하기 때문이다. 자는 방을 옮긴 뒤로는 할머니의 전화 소리에 깨지 않는다. 할머니가 이른 시간부터 바쁘신 다른 이유는 오전 10시가 되기 전 누군가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루는 “언니~” 하며. 하루는 “아이고 하하~” 하며. “아이고”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70년대에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옆집 할머니와 내가 사는 층은 이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 층이다.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지 않는 나는 가끔 옆집에서 들리는(현관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소리에 부러움을 느낀다. 문턱이 높지 않은 사이의 친구가 가까이 있는, 그런 게 부러운 거지. 그러다가도 매일 아침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상상하면 그런대로 끔찍해서 부러웠던 마음은 다 헛것이 된다.
때마다 맛있거나 조금은 탄 것 같은 음식 냄새가 현관 밖으로 삐져나오면 오늘은 뭘 해 드셨는지 대충 짐작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오는 내게 “색시가 왜 들어 신랑 시키지” 하시면 할머니께만 보이는 유령 신랑이 옆에 있나 싶어 돌아보게 되고, 해마다 단감을 몇 개 가져다드리면 놀라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다가 우리 집 쪽으로 쓰레기를 방치하시면 마음은 차갑게 식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마음 붙잡고 사느라 번거롭다. 언젠가는 이웃으로 이별할 날이 오겠지. 옆집 할머니가 그리울까. 그건 아니다. 그럼 내 마음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고 정리가 된다!
>
아랫니 중 가운데 뒤쪽에 작은 이가 하나 더 있다. 한 몸처럼 붙어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혀끝이 그 작은 이에 닿아 혀를 좌우로 움직이는 습관이 있다. 작은 이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자라면서 생겼다. 놀란 엄마에 비해 치과 선생님은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해 그 자리 그대로, 영구치 뒤에 숨어 있다. 숨은 이에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새삼 이름이 없어 서운했겠구나 싶었다. 의학 사전을 들춰보면 가운데 아랫니의 명칭은 ‘중절치’다. 뒤에 있는 이는 ‘숨은 중절치’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기엔 혀끝에 가장 먼저 닿는다. 숨은 이가 아니라 제일 잘 느껴지는 이다. 그럼 ‘혀끝치’는 어떨까. 혀에 자란 이 같은 느낌. 신비롭고 징그러워 마음에 든다.
이름을 갖는 것. 이름으로 불리는 것. 누군가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싸움의 동기와 형태는 제각각이라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주체가 소수일 때 치열해진다. 싸움의 치열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무지한 시절도 있었다만.
혀끝치는 송곳니를 반으로 자른 형태라 혀를 세게 움직이면 아릿하다. 혀가 똑바로 안착하지 못하고 살짝 비껴있는 것도, 그래서 입꼬리가 자꾸 내려가는 것도, 혀의 신경이 혀끝치에 닿아있어서 일지 모른다.
> 옥상에 백로가 죽어있다. 도시 한복판인 이곳에 왜 백로가 죽어있을까. 옥상에서도 계단을 가려주는 지붕 위에 쓰러져 있어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다. 흰 비닐인 줄 알았던 나도 가까이 가서야 백로인 걸 알았다.
집에서 촛대와 소주잔의 쓰임은 모두 발아를 위함이다. 수업 때문에 받은 수태지만, 상태가 꽤 좋아보여 촉촉하게 물에 담가 푹푹 꽂아 놨다. 옥상에는 백로가 죽어있는데 옥상 아랫집에 사는 나는 발아를 꿈꾼다. 가끔 모든 게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고, 갈등은 여기서 출발하는 듯하다. 망가진 안경을 몇 주째 쓰는 나도 갈등의 주인공이다. 백로. 어쩌지.
> 일주일에 한 번 문학과 광기에 대한 수업을 듣는데 소량의 미침은 생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짧은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지나 온 자리를 보면 흐릿한 수강생의 발자국으로 정신이 없다. 수태에 붙어 사는 풍란처럼 어딘가 붙어살려고. 다른 난에 비해 꽃이 쉽게 핀다는데 쌜쭉한 나비처럼 생겼다. 미쳐서 잘 키워야지.
>봄이 오나 봐. 진짜 왔네. 식물들 싹 다 물 줘야겠다는 말에 아침 빵부스러기 치우고, 물조리개 들고 기웃거리는데 게리 멀리건을 듣던 동거인이 나를 보니 음악이 전원일기처럼 들린다고. 거울 앞으로 가보니 일용엄니가 집에 있네. 한바탕 웃고 노래진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잘랐다. 집 앞 꽃집에서 산 작은 토분에는 뭘 심든 다 죽는다. 뭘 고민해. 안 심으면 되지.
> 일주일에 두 번 식물 수업을 듣는데 오늘은 수태에 풍란 심기를 했다. 학생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선생님의 질문보다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할 때가 많다. 선인장 모양을 두고 무엇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누군가 열무잎이라고 대답했다. 다 같이 웃어버렸다. 정답은 생선뼈. 다음 주에는 오렌지 자스민과 장미 허브에 대해 배운다.
>
매번 하나의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만원 버스에서 운 좋게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고, 서 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다가 눈이 멈춘 곳은 등받이의 모서리 손잡이를 잡고 있는 굳은 손이었다. 딱딱한 손. 소매로 반쯤 덮은 손등, 곧게 뻗은 손가락이 외할아버지의 손과 비슷했다.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파트 단지의 방역 일을 하시다가 오른팔의 절반을 잃어버리셨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라서 사고 당시의 긴박함이나 고통의 순간을 함께 경험하진 못했다. 할아버지의 오른팔이 장난감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는 걸 자각한 나이가 되었을 땐 의수와 남은 팔의 결합에 잘 적응하신 것처럼 보였다. 살아계실 때 자세한 걸 묻진 못했지만, 선명한 기억은 남아있다. 할아버지의 아침은 팔의 결합으로 시작했다. 거실에 있던 원목으로 만들어진 4단 서랍장의 두 번째 칸에서 의수와 각종 거즈를 꺼내 남은 팔과 합체하셨고, 저녁이 되면 그 서랍에 의수와 남은 거즈를 다시 넣으셨다. 대부분의 일은 왼손으로 하셨다.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때는 꼭 배낭을 메셨다.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할 땐 주말까지 차곡차곡 모았다가 본인의 딸이자 나의 엄마에게 부탁하셨다. 엄마의 손글씨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는 온전한 오른손이 있는,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글을 쓰다가 숨이 탁- 하고 막힐 때면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눈으로 구멍이라도 뚫을 것처럼 강하게 힘을 줘 쳐다보면 뭔가 번뜩하고 지나간다.
‘정신 차려야지.’
싶은 순간이다.
이미 뭔가 지나갔다. 그럼 그건 일어난 일이 되는 거다. 할아버지의 그 날도 그랬을까. 돌아가신 지 13년째. 이제서야 자세하게 상상한다. 끔찍하지만, 당사자의 아픔만큼 끔찍할까. 그럼 또 그건 아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여름이 오면 동네 곳곳에 하얀 연기를 내뿜는 방역 트럭이 오간다. 구석구석 왔다 갔다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 연기가 사방을 뒤덮고, 진한 냄새가 옅어질 때쯤 하얀 연기도 흩어진다. 지독한 약품 냄새보다 먼저 떠오르고, 휘발되는 건 할아버지의 오른팔이다.
> 그 예전에 내가 고딩일 때 인터넷 방송부였는데 원예부에 있는 애들은 되게 지루한 애들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 애들이, 이제 와서 부러운거야. 그 예전에, 그 혜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질투가 나더라고. 그 기쁨을, 그 예전에, 그 나이에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질투가 나더라고. 원예부 애들은 식물을 키울 동안 나는 인터넷 방송 만든다고 PC 앞에만 앉아있었거든. 아무 것도 안 하고. 나는 매일 무엇에 질투를 할까 찾으면서 사는 사람같아. 오늘은 고딩 때 원예부 애들이야.
> 아침에는 멸치로 육수를 낸 물국수를 말아 먹었고, 점심에는 아침에 먹었던 물국수를 다시 말아 먹었고, 서너시쯤 시내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췄다. 바글바글한 안경점에 의자 두 개 차지하고 앉아 삼삼오오 짝진 사람들을 둘러봤다. 지갑을 열었다 닫기도 하고, 전화기를 보기도 했다. 나처럼 혼자 온 남자는 점원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했는데 점원의 표정, 말투, 행동은 어느 한계점에 다다른 듯했다. 저녁에는 토마토를 끓여 만든 소스를 뿌린 애호박 스테이크를 먹었다. 버스나 전철에서는 노트를 꺼내 예전에 적어 둔 몇 개의 글귀를 반복해 읽었다. 그들 중 1999년 10월에 한강 작가가 쓴 수상 소감도 있었고, 2010년 크리스마스에 아무개가 나에게 써준 편지 내용도 있었고, 김정환이 쓴 술자리의 시인 최승자 이야기도 있었다. 아주 가끔 미래지향적인 명언도 있었다. 안경은 마음에 들고, 노트는 꼭 맞는 것들로 차고 있다. 물국수는 내일 아침에도 먹을 수 있다. 가장 좋았던 때를 생각한다.
> 일요일의 응급실은 묘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동료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천천히 둘러봤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단다. 당장 내일모레 출국인데 이곳에서 수술할지 모국에서 수술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돌아가 수술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의사는 임시방편으로 시술을 하고 있었고, 그 사이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한 분이 오른손가락을 휴지로 둘둘 말아 급히 뛰어 들어오셨다. 주방에서 강판을 갈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한다. 바닥에 피를 뚝뚝 흘리며 느긋한 의사를 기다리는 사이 어린 남자아이는 울상이 되어 아버지와 들어왔다. 그 아이도 팔이 부러져있었고 심각한 아이에 비해 아버지는 냉랭했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동시에 또 다른 아주머니는 접수대 간호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한마디였다.
“어디서 니가 날 정신병자 취급이야?”
> M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옆집 순이네 이야기처럼 내게 전달한다. 신통방통하다. 양쪽 베란다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가장 큰 방의 바닥에 누워 이야기를 듣는다. 오필리아가 어쩌고, 햄릿이 어쩌고, 저쩌고. 약하게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이 다리 밑으로 들어온다. 초여름의 기분이다. 카페인이 없는 가루 커피를 진하게 풀어 얼음 다섯 개 넣고 차갑게 만들었다. 세무서의 일도, 구청의 일도, 도서관의 일도 다 번거롭다. 점심으로는 어젯밤에 만들어 놓은 꽁치 김치찌개와 라면 하나를 끓여 먹어야지. 새 컴퓨터가 생겨서 좋고, 컴퓨터가 생긴 뒤로 컴퓨터만 보는 것은 싫고, 주방에 있는 노란 꽃이 좋고, 홍콩야자가 시드는 것은 신경쓰인다. 정착하고 싶다.
>
버스 안 신호대기중에 보이는 풍경을 빠르게 적는다. 검은 단발머리에 앞머리가 있고, 옅은 하늘색 핀스트라이프 코튼 셔츠와 검은 슬랙스, 검은 양말, 베이지 톤의 운동화, 새신발같진 않다. 얇은 체인이 달린 작은 가죽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붉은색 가죽 케이스를 씌운 휴대폰을 왼손으로 쥐고 있다. 혼자 걷는, 이어폰을 낀, 젊은 여자만 공략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내 옆에는 화장을 고치는 사람이 있다. 손놀림이 빠르다. 덥고 습하다.
>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잘 참으시다가 영정사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셨다. “경자야, 네가 먼저 가면 어쩌냐, 경자야.” 이모할머니의 영정사진에는 평소 잘 지으시던 표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향을 피우고 나란히 서 두 번 절을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상주와 한 번 절을 하고 주저앉으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건넛방으로 갔다. 몇 년 동안보지 못했던 외가 식구들이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식사를 끝낸 뒤였다.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릴 적, 증조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을 때 이모할머니의 것도 함께 받았었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며칠 밤을 자며 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불평하지 않았고, 불편하지 않았다. 이모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하느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염이 끝나고 그 어떤 고인의 방보다 우렁찬 찬송가 소리가 이모할머니 방에서 울려 퍼졌다. 문득 내가 끼고 있는 은반지의 나머지 한 짝이 궁금해졌다. 본래 쌍가락지인데 하나는 증조할머니가, 하나는 이모할머니가 갖고 계셨다. 4년 전,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 은반지는 내가 받아 끼고 다녔다. 나머지 하나, 이모할머니가 끼시던 반지는 누가 가져갔는지 궁금해졌다.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었지만, 반지에 관해 이야기하진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후덥지근하더니 장지를 떠나는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다 나으면 미국에 있는 딸에게 가겠다고 하셨단다. 임종 삼십 분 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잘 살아라, 하느님 잘 믿어라, 아이들 잘 키워라, 나는 간다.”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저승이 무엇인지.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상복 입은 사람들, 고스톱 치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돈을 쉬는 사람들을 본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 타고 있는 열차는 퇴계원역에서 일어난 낙뢰 사고로 인해 사릉역의 중간쯤에 멈춰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낙뢰 사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금방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출발이 지연된다는 네 번째 방송이 나올 때 다 읽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꺼냈다. 다섯 줄을 읽다가 생각만큼 읽히지 않아 가방 위에 올려놓고 애인과 노닥거리는 옆사람을 흘깃 봤다. 퇴계원역이 아니라 내가 낙뢰를 맞은 것 같다. M이 보고싶다. 얼른 가서 안아줘야지. 내가 맞은 낙뢰를 나눠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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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낭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다 낭만의 뜻이 무엇인지 잊었다. 이렇게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 될 때 낙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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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섬세한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목소리가 크고 굵어서 종종 화가 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지만 삼십 년 넘게 겪어본 바에 의하면 화를 잘 내거나 악의가 있는 성격은 아니다. 내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건 아빠의 모든 형제가 비슷하다는 데 있다. 엄마의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섬사람이라서 행동도, 표현도 세다는 거다. 아빠는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지금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울 사람인 엄마와 결혼해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아빠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는 모두 제주에 사셨기 때문에 억양과 표정, 목소리의 크기가 그대로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요즘 다시 제주의 형제들 같다. 호르몬의 변화나 나이 앞자리 수의 변화가 아빠를 종종 슬프게 하는 것인지, 화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자주 만나고,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정도다. 아빠의 기분에 전염된 엄마의 넋두리를 방패 없이 듣는 건 덤이다. 이번 주 주말도 나의 몫을 다하고 방전이 되어 일요일이 지나기 전 도망치듯 서울로 간다. 도망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역까지 태워주는 아빠는 가방 어딘가를 뒤적이더니 미지근하지만 가면서 마시라고 음료수를 건네준다. 아빠를 미워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빠라고 내가 미웠던 순간이 없었을까. 돌아가는 길이 가장 복잡하다. 내 자리로 돌아가면 새까맣게 잊어버릴 울렁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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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에 막걸리를 한가득 싣고 가는 아저씨를 마주쳤다. 보풀이 난 목도리를 머리에 칭칭 감고 여러겹 겹쳐입은 탓에 빨간 니트 겉옷이 땅땅해보인다. 콧물을 옷깃으로 닦으며 리어카를 앞으로 밀고가는 아저씨를 향해 P는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외쳤다.
“아저씨! 막걸리 한 병 얼마예요?”
“한 병에 삼천 원, 두 병에 오 천원이요!”
“한 병 주세요. 이거 이동막걸리죠?”
“네네. 아시네요. 누워서 보관하지 마시고, 냉장고 시원한 곳에 세워서 보관하세요. 잠시만요. 거스름돈이...”
2017년 12월 한파가 몰아친 겨울 아주 늦은 밤에 막걸리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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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될 것 같아.”
꿈 속에서 외쳤다. 기분이 왠지 그렇게 흘러서 즉석 복권을 샀다. 로또 번호를 체크해야 하는 사람을 위한 책상 앞에 앉았다. 이 자리만큼 누군가의 간절함이 베어있는 곳이 있을까. 지갑에서 오백 원을 꺼내 긁었다. 나의 숫자와 행운의 숫자가 일치하면 당첨. 오천 원 당첨되었다. 복권 집에서 나와 떡볶이를 사 먹었다. 오늘 꿈에는 “복권에 당첨되었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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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좁은 골목에는 네 평 남짓 작은 분식집이 있다. 라볶이가 맛있기로 유명해서 어느 시간에나 꼭 손님이 있다. 그곳에는 세 분의 아주머니가 만들고, 갖다 주고, 치우는 역할을 분담하는데 세 분 중 두 분(만들고, 갖다 주는)은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근처 가게 주인들의 험담이다. 오늘은 바로 옆 슈퍼와 옷 가게 주인이 주인공이다. 슈퍼는 장사는 잘 하는데 사기꾼 같다고. 특히 옷 가게 주인을 두고 무섭게 이야기하더니 백여시로 마무리 지었다. 좁은 공간에서 매서운 대화가 오가는 모습에 괜히 반찬을 남기면 젊은 것들이 아까운 줄 모른다고 욕할까 봐 깍두기 세 개, 단무지 두 개를 꾸역꾸역 다 먹고 나왔다. 그리고는 길을 걷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생각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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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응~ 나야 나 오늘 밑에서 우리 밸리 단스 회원들하고 모임이 있어서~ 응~ 근데 집에 밥이 하나도 없어 응~ 그래서 밥이 없어서 응? 괜찮아? 홍홍 알아서? 응 그래서 집에 올라가서 밥만이라도 얼른 하고 내려올까 했지 응~ 알아서? 진짜? 응~ 지금 어느 역이야? 으응~ 아직 멀었네 그럼 알아서 챙겨 먹어요~ 응~
밥.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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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리에서 가정리로 넘어가는 이차선 도로에서 자라섬을 만났다. 넓고 조용한 강 위를 떠다니는 오리 두마리가 우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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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에서 을지로4가까지 역사 안으로 걸었다. 걷는 길에 여러 종류의 다방과 스낵 가게들을 봤다. 주인은 모두 50대, 60대 사이의 여자, 손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들. 계중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인쇄된 서류 뭉치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외할아버지가 저런 부류의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억지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 사기꾼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외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 개새끼. 나지막이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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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우동집에서 기본 우동만 먹다가 튀김 우동을 시킬 때의 그 호사스러운 기분이란.
> 감당하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나와 동료는 커피숍에 앉아 “우리 5분 동안 일 얘기하지 말자”해놓고 30초간 불안하게 눈동자 굴리다가 “그런데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는 순간. 그래 그냥 일하자.
> 마을버스에서 마주친 아래층 아주머니께 이사 소식을 전했다. “아주머니 저희 3월에 이사 가요.” 아주머니는 아주, 많이 아쉬워하셨다.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말씀도 하셨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집 와이파이를 함께 사용하고 계시는데 우리보다 와이파이가 더 아쉬우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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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가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식식거리며 문을 열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앞에 가던 차가 거슬렸는지 스타카토 크락션을 선보이더니 정말 앞차를 향해 가는 것일까? 어라? 뒤로 가네? 아랫도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뒤로 간다. 뒤로 뛴다. 아 급하셨구나. 그래서 그렇게 누르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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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프란체스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성당의 모든 것이 좋았다. 높은 천정, 대리석으로 쌓은 벽들, 반짝 빛나는 묵주알. 성당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착각까지.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학교에서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이 되면서 종교는 신의 말을 빌린 사람이 운영하는 단체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매주 다니던 성당도 각자의 집이 생기며 발길이 끊어졌고, 길을 다니다가 성당이 보이면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바깥에서 보니 선명하달까. 누군가 꾸며놓은 신성함을 유리알처럼 너무 소중해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아픔을 온전히 기대고 싶어 하는, 구원받지 못하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 고등학교 동창에게 청첩장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고민거리는 비슷비슷하고 탈출구 없는 생활의 연장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각자의 비상구는 있다. 드러내지 않을 뿐. 나의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그 걱정만 했다. 오랜 시간 친밀했던 친구였는데 더 이상 그 친밀함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서운했다. 각자 삶에서 강하게 살아남길.
> 예전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친구의 가방을 잠가주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그 친구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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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아래 산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집을 일 년 동안 우리 손으로 뜯고, 부수고, 자르고, 붙이고, 칠했는데 제일 중요한 단열을 빠트렸다. 미친 더위에 당하고 아뿔싸. 겨울에는 정말 춥겠구나. 단열재 14장을 자르고, 붙였다. 하루가 다 갔다. 답답하거나 갑갑하거나 긴 통화를 해야 하거나 애들의 짧은 산책을 위해 옥상에 올라간다. 앞으로는 원효 사거리가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용산역과 호텔 몇 개가 보인다. 사거리 쪽을 바라보면 불법 유턴이나 신호 위반하는 차들을 볼 수 있다. 죽기 전에 면허 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작은방 단열을 마치고, 쉬는 동안 오랜만에 <해피투게더>를 틀어놨다. 스물에 봤던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딱 하나, 아휘가 이과수 폭포에 있던 그 장면. 푸르스름한 그 장면만 남아있었다. 시기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이나, 영화, 음악이 있다는 게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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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초등학교에서 투표하고, 조용한 집에서 저녁을 기다린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둔 에어컨 설치 기사가 결국 설치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벌써 두 번째다. 그들이 원하는 설치 비용을 지불하면 에어컨은 바꿀 수 있는데 다들 7층에 올라오면 1층에서 말했던 비용을 까먹는지 몇 배의 추가 금액을 요구한다. 오늘도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각자 위치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옥상의 바로 아래층이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배송을 신청했다. 배송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1층에 도착했다고 해 내려갔다. 생수, 휴지, 두유, 닭가슴살, 카레, 미숫가루, 오곡 쌀. 수위실이 있는 2층까지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기사는 매우 좋아했다. ‘7층까지 안 가도 되는 것이구나’ 싶은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생수를 고정하는 끈이 4층에서 끊어졌다. 괜찮다. 양손으로 들면 되니까.
옆집 할머니는 집 안의 쓰레기를 복도에 내놓는 걸 좋아하시고, 앞집 할아버지는 정체 모를 물을 복도에 잔뜩 찌끄리는 걸 좋아하신다. 앞집 할아버지의 옆집 아주머니는 마주쳐 인사하면 매우 부끄러워하신다. 독특한 7층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면 선거 결과가 나와 있겠지. 사실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그렇다고 오답이 확실한 곳에 도장을 찍을 순 없으니 찍는 순간까지 오래 걸렸다는 것만 사실이다.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보이는 호텔의 객실 투숙객 현황을 확인한다. 기준은 불이 켜져 있는 방의 수. ‘음 오늘은 많이 머물다 가는군’ 하는 식의 생각. 며칠 전, 호텔 근처의 4층 건물이 붕괴한 사건 이후에는 ‘저 호텔을 지을 때 많이 흔들렸을 거야’라는 생각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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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후루룩 먹고 급하게 달려왔는데 타야 하는 제주행 비행기는 1시간 후에 출발한다. 지난주 주말, 아빠와 엄마의 살림살이를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사할 때마다 느끼지만, 사람 한 명이 보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갖고 있어야 하는 ‘무언가’가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 싶다. 짐을 챙기는 동안 버릴지 가져갈지 정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언니에게 “나에게 묻지 말고 니가 판단해서 다 버려라”라고 말했는데 문장이 너무 완벽해서 픽 웃었다.
이 집에 오면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 시절에 머무는 듯하다. 기록된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모두 어리고, 젊을 때다. 내가 이랬지, 아빠는 정말 젊었어(나랑 진짜 닮았어)오늘 제주에 가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모습을 봬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보다 아빠의 마음이 궁금하다. 서른둘의 아빠 사진을 보고, 육십을 바라보는 아빠가 엄마를 보내야 하는 마음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공항은 언제나 분주하고, 밝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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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세탁소에서 세탁물 건조하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 남성복을 전공한 나는 내 옷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각종 주머니를 보고 경악했던(있어서 놀랐다기보다는 이걸 다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경악) 것이 떠올랐다. 그 이후 남성 코너의 옷을 주로 사 입는데 주머니 때문은 아니고 태초부터 벙벙한 패턴으로 변형이 시작되는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그들의 물리적인 힘도 부러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가구를 7층으로 옮겨야 한다거나 뭐 그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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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집에 들어와 김치 청국장 재료를 냄비에 던져 넣고 끓이는 동안 어슐러 르 귄의 부고 기사를 읽었다. 글쓰기 공부하려고 샀던 첫 책이 그녀의 것인데 괜히 펼쳐보고, 닫았다. 오늘도 여전히 빈틈없이 춥다. 보일러 빵빵하게 틀고 다음 달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놀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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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요새.
올해 나는 덜 발발거리기 위해 늦잠을 잤다. 아침 겸 점심으로 룸메이트가 만들어 준 김치 떡만둣국을 먹고 올해의 첫 커피를 마셨다. (원두가 동이 나 이틀 동안 마시지 못했다) 드디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드디어!
2016년부터 성가신 꼬리처럼 붙어 다녔던 고민을 털어버렸다.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곧 두 번째 책이 나올 테고 아베크의 일곱 번째 무언가도 시작할 힘이 생겼다. 아름다운 물건을 모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상점도 만들고 있다. 내게 활기를 찾아 준 도잠의 일은 새해에도 계속 되길 바라고, 무엇보다 올해에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다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슷한 형태로 자주 위치가 바뀌는 책상은 새해를 맞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왼쪽에 있던 액자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에 있던 모래시계는 왼쪽으로, 앞에 나와 있던 연필꽂이는 살짝 뒤로, 엄마에게 받은 묵주함은 모니터 앞으로 나왔다. 만년필 세 자루는 묵주함 뒤로, 두 개의 문진 중 짧은 문진만 앞쪽으로 옮겼다. 모니터 하단에 붙어있던 종이 몇 장은 찢어버렸다. 작년의 다짐인데 올해에는 해당이 안 된다. 사용하는 노트는 한 권 늘었고, 아마도 오른쪽 노트 자리에 합류하게 될 듯. 액자 앞에는 빨간 테 안경을 쓴 Little Miss Busy가 수전 손택 전용 책꽂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액자 앞의 그림 속 나의 시선과 비슷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각자의 요새에서 모두 잘 살아남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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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여름 사진을 찾아본다. <곡성>과 <옥자>의 숲 사이를 오갔던 올여름 산책로는 꽤 만족스러웠다. 내리막길에서 무릎이 찌릿할 때도 있었는데 아직 뭐 그렇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름에는 초록빛이 풍만해서 여름에 찍힌 사진이 좋은데 이상하게도 이 사진은 흑백 필름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은 정은지 씨가 찍어줬다. 산책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하다 보니 그녀의 카메라 앞이 가장 편하다.
오랜만에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노고지리의 ‘찻잔’을 LP로 들었다. 산울림 버전보다 도입부가 강렬해 좋았다. 역시 마무리는 김추자였고, 돌아올 친구 생일에는 질 좋은 LP 한 장을 선물해야겠다. 이 정도면 풍족한 연말.
겨울에 두 사람이 떠났다. 매해 겨울이 되면 HJ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고, 며칠 전 투병의 문턱에서 이르게 떠난 JM언니가 생각날 것이다. 앞으로 생의 축복보다 이별의 아픔을 느껴야 할 횟수가 더 많겠지만, 힘껏 슬퍼하고 떠난 사람을 잊지 않는 게 남은 사람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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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집 앞이 눈으로 쌓여있어 빗자루를 들고나왔다. 약간 땀이 날 정도로 쓸다가 뒤돌아 내가 쓴 자리를 보는데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아하는 언니와 나를 두고 아빠는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매번 세검정 언덕을 다 쓸고 들어 오셨는데 그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다행히 이곳 언덕에는 열선이 깔려있어 집 앞만 슬렁슬렁 쓸면 된다. 열선이 안 깔려 있었으면 아빠 마음 알기 전에 힘들어서 욕부터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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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8시 34분. 이미 만취한 아저씨는 주절주절 대며 버스에 올라탄다. 카드를 찍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기사에게 변명한다. 기사는 낮은 목소리로 카드 찍으시라 말한다.
삑- 카드를 찍고 돈이 나가는 소리. 만취 아저씨는 돈이 나갔다며 투덜댄다.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에서 같이 흔들리니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다. 취한 사람.
양평에 사는 친구가 또 한잔하자고 해서 다시 버스를 탔는데 돈이 나갔다고 투덜거린다. 아무도, 기사도, 승객도, 아무도 만취 아저씨를 쳐다보지도, 대꾸하지도 않는다. 이 버스에 없는 사람. 냄새만 남은 사람이다. 다시 기사에게 가 두 정거장 뒤에 세워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버린다. 술이 몸을 조종하는 만취 아저씨. 아저씨 말대로 두 정거장 뒤에 기사는 문을 열어줬지만, 만취 아저씨는 알까? 두 정거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취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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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상 앞에서 마셨던 커피 컵을 치우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책상 앞에 앉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잠을 잤지만, 다른 나는 밤새 책상 앞에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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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빠른 속도로 건널목을 건너다가 도브 라운지(dove lounge)에 있던 비둘기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응가를 제대로 맞았다. 며칠 전, 같은 자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후드득’ 소리에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두둑’ 정수리에 맞았다.
지난주에 산 책의 비닐을 아직 못 뜯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비닐을 뜯겠다는 결심의 시간이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책방에서 머무르며 고른 책인데 손이 안 간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먼저 읽던 책을 다 읽으면 구매하거나 너-무 스트레스가 심한 날 구매한다. 그리고 가진 책 중 한 권을 골라 중고로 판다.
밤이 싫다. 밤이 없는 삶을 원한다. 여름이 싫고, 겨울이 좋았던 예전의 나는 겨울이 싫어졌고, 여름은 잘 모르겠다. 밤은 여전히 싫고, 낮은 좋다. 아침은 더 좋고, 시끄럽게 떠드는 새는 더 좋다. 내 머리에 똥 싼 비둘기 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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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수어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잡스러운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배워야 하는 양이 많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앞에 나가 가족 소개를 했는데, 수어를 할 때 내 의지대로 목소리를 잠글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8월까지 듣는 이 수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농인에게는 일반 이름과 달리 시각적으로 보이는 수화 이름도 있는데 (예를 들어 얼굴이 둥근 여자, 눈이 작은 남자 등) 최땡땡은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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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 숲속 산책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 끝자락으로 가면 숲과 연결되어있는 작은 길이 나온다. 길은 두 방향으로 나뉘어있다. 왼쪽으로 가면 아랫동네 공원과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네 호텔의 뒷문,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다. 새소리 간혹 까마귀 소리가 위협적일 때도 있지만, 흙길을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르막을 오를 땐 땀이 나지만, 좀 개운한 기분이 든다.
<곡성>을 본 뒤 산책할 때는 영화 속 기운이 현실까지 침투해 며칠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무명이나 일본인이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옥자>를 보고 걸었더니 스산했던 숲이 다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며칠 동안 숲은 옥자의 숲처럼 느껴질까. 아무래도 스펀지 같은 삶이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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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에 빠지면 책상 구석에 있는 라이터를 켜본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흰 버튼을 누르면 작은 불꽃이 위로 쑉 올라오는 게 꼭 마술 같다. 버튼을 누를 때 들리는 딱- 소리도 무력감을 환기하는 것 같고. 오늘 동네 산책을 하다가 거대한 담금주 두 병(병이라고 하기에 너무 큰 병)을 보고 몰래 찍는 나를 보던 동료가 "너 나이 들면 거실 벽에 저런 병 가득 만들어놓을 것 같아"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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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재가 실린 신문을 샀다. 처음이다. 매번 신문사 사이트에 올라오는 것으로 확인을 했는데 마지막이라니까 사야 할 것 같았다. 매달 한 번 실리고 그 와중에 특집 기사 있으면 한 주 밀리는 그런 기사였다. 입맛대로 쓰기에는 실력이 부족해서 꼭 따뜻한 청년의 시선이 담긴 그런 글을 써야 했다. 신문도 사고, 오랜만에 마트에서 장도 봤다. 장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감을 잃었다. 야채 코너만 세 번을 왔다 갔다 했다. 계란과 두부 아주머니의 호객행위가 다시 멋쩍다. 오늘 저녁엔 삼겹살을 굽고, 엄마가 말려준 표고버섯, 미나리, 지난 주말에 같이한 김장김치를 먹어야지. 엄마가 그랬는데 나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하신단다. 누가 뭐래도 먹는 건 안 까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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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혼자 다니고, 혼잣말을 자주 하고, 누군가의 미래를 볼 줄 안다는 친구가 있었다. 다들 피했던 그녀와 짝꿍이 되어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는 내게 수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개의치 않았다. 종종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나 곡명을 추천해줬는데 그때 자미로콰이를 알게 되었다. 이름도 또렷이 기억나고,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데 어떤 계기로 대화가 끊겼는지 기억이 없다.
졸업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곳은 삼 년 전 남산 공원 입구다. 나는 버스 안에 있었고, 그녀는 고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 허공을 보며 걷고 있었다. 늘어진 반소매 티셔츠, 무릎이 나온 면바지, 구겨 신은 운동화. 이상하게도 자미로콰이보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에 나오는 자흔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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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타인의 행동이(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상점 안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오늘 저녁에는 신호에 대기 중인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탁을 맡겼던 와이셔츠 두 장을 찾아 승용차에 올라타는 젊은 회사원의 모습이 그랬다. 귀가하는 길인 듯 보였다.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풍족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느낌도 아니었다. 이런 느낌들이 나를 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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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은행을 넣은 흰 쌀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스팸을 굽고 해초 무침을 먹어야지. 이 생각을 하고 나니 일이 손에 잡힌다.
> 우체국에 가서 팩스 한 통 보내고, 점심으로 먹을 파스타 재료, 저녁에 먹을 된장국 재료를 샀다. 마늘값이 너무 올라 그나마 싼 깐마늘 한 봉지를 샀는데 통마늘로 살 걸 괜한 후회가 든다. 엄마라면 깐마늘은 안 샀겠지. 이런 생각 때문이다. 가벼웠던 장바구니가 재료들로 차서 들기 좋은 무게가 되었다. 조금 걸어 집에 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라 문자를 남기고, 햇볕이 뜨거워서 챙겨 나온 짙은 남색 모자를 눌러썼다. 정류장에는 버스가 언제 오나 도로 쪽으로 고개를 내미는 양산 쓴 할머니 한 분과 나만 앉아있다. 뒤로는 휴대전화 대리점이 있는데 감정 없는 성우 목소리로 녹음된 통신사 광고가 나오고 있다. 이제야 바람이 분다.
>지난주에 마감한 원고가 신문사 웹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확인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러 내려간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조용한 동네를 가로지른다. 내가 신은 슬리퍼의 소리만 들린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먼지가 잔뜩 낀 하늘. 암울했던 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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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불구덩이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 같았던 7월의 마지막 날.
써놓고 소리 내 읽어보니 이거 엄청나게 웃긴 비유다!
>카레를 끓이면서 주방 테이블에 앉아 어제 일기를 쓴다. 오늘따라 압력밥솥은 늦게 끓는다. 저러다 밥이 타면 어쩌나 하며 몇 번을 뒤돌아보고 냄새 맡는다. 덥다. 여름은 언제나 더운 게 문제였다. 자판들이 하나씩 떨어져나와 눈앞에 동동 떠다닌 것 같다. 오 년 전 생일 날 선물 받은 시집을 펼쳐놓고 모르는 한자를 찾다가 도저히 못 찾겠어 덮어버렸는데 그게 괜히 원망스럽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덮은 책장의 저주구나. 일이 터지고 나니 세수할 때 지워진 꿈이 생각났다. 좋아하는 컵의 손잡이가 다 떨어져 나간 꿈이었다. 어머 이게 왜 이래. 응 다 깨졌어. 이 대화가 아주 생생하다. 오늘도 그 컵에 우유를 담아 마셨는데 이제 다 끝났기를 바랄 뿐이다.
>일어나 침대 정리하고 컴퓨터 좀 훑어보고 커피 내리고 빵 굽고 잼 발라 먹고 빨래 정리하고 화분에 물 주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기를 기다리며 컴퓨터 훑어보고 오늘은 꼭 끝내야 하는 일들을 노트에 적어 놓고 다시 컴퓨터 훑어보고 노래를 듣다가 세탁기가 다 돌아간 것 같아 베란다로 나가야겠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 시작.
>카레를 끓이면서 주방 테이블에 앉아 어제 일기를 쓴다. 오늘따라 압력밥솥은 늦게 끓는다. 저러다 밥이 타면 어쩌나 하며 몇 번을 뒤돌아보고 냄새 맡는다. 덥다. 여름은 언제나 더운 게 문제였다. 자판들이 하나씩 떨어져나와 눈앞에 동동 떠다닌 것 같다. 오 년 전 생일 날 선물 받은 시집을 펼쳐놓고 모르는 한자를 찾다가 도저히 못 찾겠어 덮어버렸는데 그게 괜히 원망스럽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덮은 책장의 저주구나. 일이 터지고 나니 세수할 때 지워진 꿈이 생각났다. 좋아하는 컵의 손잡이가 다 떨어져 나간 꿈이었다. 어머 이게 왜 이래. 응 다 깨졌어. 이 대화가 아주 생생하다. 오늘도 그 컵에 우유를 담아 마셨는데 이제 다 끝났기를 바랄 뿐이다.
>일어나 침대 정리하고 컴퓨터 좀 훑어보고 커피 내리고 빵 굽고 잼 발라 먹고 빨래 정리하고 화분에 물 주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기를 기다리며 컴퓨터 훑어보고 오늘은 꼭 끝내야 하는 일들을 노트에 적어 놓고 다시 컴퓨터 훑어보고 노래를 듣다가 세탁기가 다 돌아간 것 같아 베란다로 나가야겠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