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


1

어서 오세요. 오늘 첫 방문이시죠? 잘 오셨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이야기의 큰 줄기만 듣도록 하겠습니다. 앉으세요. 바로 말씀하시면 되는데. 잠시만요. 정확한 기록을 위해 녹음을 하겠습니다. 녹음테이프를 교체하는 걸 깜빡했네요. 녹음해도 괜찮으시죠? 선생님께 설명 들으셨죠? 네. 기록용으로만 사용을 하기때문에 1년 뒤에는 폐기합니다. 제 뒤쪽 오른편 책장 보이시죠. 오른쪽이요. 그 안에 꽂혀있는 것들이 모두 녹음테이프 입니다. 꽂혀있는 순서대로 폐기가 되는 겁니다. 테이프 상자를 보면 녹음 날짜와 내담자의 번호가 적혀있습니다. 보이시죠? 책장의 손잡이에 자물쇠가 걸려있고, 열쇠는 저와 접수를 도와주신 선생님만 갖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네? 아, 보관 기간이 필수인 건 아닙니다. 가능하면 1년을 넘기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왜냐하면 아니 예를 들면, 상담을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 대략 6개월 이내에 결과가 나오는데 변수가 있기 때문에 1년이란 시간을 정해둔 거죠. 1년을 넘기고 테이프를 폐기하신 내담자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대부분 그 전에 완주하고 이곳에 안 오세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네 녹음테이프를 사용하는지 궁금하셨죠. 신뢰입니다. 복사본을 만들지 않는다는 서로의 믿음을 위한 거죠. 녹음 파일로 만들면 내 정보와 이야기가 어떤 복사본으로 재생될지 모르니까요. 저희는 눈에 보이게 만듭니다. 만질 수 있게 만들고요. 설명이 충분했나요? 이 부분을 선생님께 다시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상담을 위한 전반적인 내용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텐데 녹음에 관한 부분이 빠졌나 봅니다. 자, 그럼 준비되셨나요? 긴장이요. 네. 내 목소리를 녹음하면 자신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했는지 까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발음, 말하는 방식을 스스로 듣는 상상부터 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상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녹음한 내용은 내담자가 직접 듣는 일은 없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긴장을 조금 풀어볼까요? 저는 이럴 때 헛기침을 두 번 하면 좀 풀어지던데 해보시겠어요? 그리고 다섯 문장 정도 이야기하고 나면 녹음 중이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그때부터 본인의 진짜 목소리,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면 헛기침부터 할까요?

따르릉. 따르릉.

아 잠시만요. 전화선을 뽑는 것을 잊었네요. 잠시만요. 이 시간대 전화가 오는 것은 아주 급한 일이거나 실수로 걸려온 전화일 텐데요. 잠시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내담자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잠시 전화기의 수신 번호를 확인해봐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저로 인해 지연되는 시간은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잠시… 네, 다음 내담자의 전화번호인 것 같은데 이거 확인이 필요하겠군요. 대부분 선생님의 접수 전화기로 연결이 되고, 상담실 내부 전화번호는 노출이 안 되어있는데, 이상하네요. 원래 이렇게 분주하거나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첫 방문인데 민망하네요. 바깥에 계신 선생님께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해서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그 사이에 안내 책자를 보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아 읽으셨군요. 선생님께서 주셨나요? 같은 책자입니다. 선생님께서 책자는 챙겨주셨군요. 그럼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주세요.

달칵.

선생님. 아직 상담 시작 못 했습니다. 방금 제 방에 있는 전화기 벨이 울렸는데요. 네네. 제가 전화선을 뽑아놓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분명 선생님이 전화를 하신 건 아닐 테고 이상해서 내담자분께 양해를 구하고 수신 번호를 확인했어요. 내담자 중 한 분인 것 같은데… 그 몇 주 전에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던… 예약 취소하셨던 내담자 25번 있었죠? 아니 그분 말고요. 왜 웃음소리가 꼭 고라니 새끼가 우는 것처럼,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기억 안 나세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웃음소리 이야기하셨잖아요. 네네 그분이요. 그분인 것 같아요. 내담자 기록 찾던 중에서 봤던 번호랑 비슷해서요. 확인이 필요해요. 제 방의 전화기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아 설마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건 아니죠? 의심이 아니라 제 방 번호를 알고 계신 분은 선생님과… 선생님뿐이잖아요. 제가 여쭤보는 건 당연하잖아요. 상담 시간이 많이 지연되어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부분만 먼저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쪽지 넣어주세요. 오늘은 문 밑으로 넣지 마시고, 손잡이 틈으로 넣어주세요. 집중할 때 밑으로 넣으시면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아요. 아뇨. 손잡이 옆으로 보면 작은 틈 있잖아요. 그 틈으로도 충분히 쪽지 넣을 수 있어요. 네?  안해봤는데  문 아래만큼 틈이 있어요. 여기요. 자세히 보면 보이잖아요.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다음 내담자 31번 예약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죠? 40분… 빠듯하네요. 31번은 아마 일찍 오시겠죠? 예약 시간보다 먼저 오시면 잘 챙겨주세요. 지금 하는 분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이것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야 하는데 첫 내담자 왔을 때 녹음에 관한 이야기 빠짐없이 해주세요. 그래야 상담 시간에 설명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잖아요. 선생님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녹음에 관한 부분을 잘 잊으시는 것 같아요. 번거로우셔도 첫 내담자와 상담하실 땐 꼭 지켜주세요. 그럼 들어가 볼게요. 오늘은 소음에 더 신경 써주세요.

달칵.

죄송합니다. 책자 좀 보셨나요? 다시 보시는 거죠? 죄송합니다. 난감하네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닌데 오늘따라 분주하게 돌아가네요. 자 그럼, 녹음에 관해서도 동의하셨고, 참 동의서에 서명하셨죠? 안내 동의서, 첫 상담 말미에 선생님께서 주셨죠? 못 받으셨어요? 아니 그 동의서에 최종 서명을 하셔야 저와 상담이 진행되는 건데. 잠시만요. 서랍에 양식이 있을 거예요. 이거, 이 동의서 못 받으셨다고요? 네네, 이거. 아 그렇죠. 그럼요. 네 하셨죠? 이 동의서 한 부는 선생님께서 갖고 계시니까 제가 상담 끝난 후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간혹 내담자 중에 기억 체계가 뒤섞이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치료의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녹음 시작하…

쿵 쿵 쿵 탁탁 탁.

깜짝이야. 어떤 새끼가 또.. 아 죄송합니다. 방음이 잘 되어있는 곳인데 다음 내담자분께서 조금 일찍 도착하셨나 보네요. 선생님께 부탁드렸는데 녹음에 집중해보죠. 자 이제 상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딩동.

잠시만요. 벨은 응급상황에서만 누르는데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달칵.

아 예 안녕하세요.

달칵.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잘하셨어요. 늦는 것보다 일찍 오시는 게 좋죠. 오늘은 20분 일찍 오셨네요. 지금 상담하는 분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지연되는 만큼 채워서 상담할 테니 여기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반복되는 꿈에 관한 이야기를 풀 텐데 상담 외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앞쪽 선생님께 말씀해주세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달칵.

죄송합니다. 혹시 어떤 분의 소개로 오셨나요? 제가 그분께도 사과를 드려야겠어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으니 신경을 안 쓸 수 없네요.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내담자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 메모장에 적어주세요. 자 그럼 이제 정말 녹으ㅁ..네? 연혁은 아까 읽으신 책자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직접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녹음은 뒤로 미루고 이곳에 대한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사실 이런 건 밖에 계신 선생님 담당의 일인데 제가 하겠습니다. 간혹 저에게 개인적인 이력이나 사생활에 관해 질문하는 내담자도 있어요. 개인적인 부분은 말씀 못 드리지만, 이력은 정직하게 말씀드려야죠. 네, 저는..

쾅쾅쾅. 쾅쾅쾅. 쾅쾅.

아씨 진짜… 잠시만요.

달칵.

뭡니까 또. 아, 고라니 새끼 아… 아니에요. 아까 전화하셨죠?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죠? 문 열지 마세요. 비키세요. 나가시라고요. 잠시만요. 선생님!!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25번이요!! 진정하세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안에 내담자분 계시잖아요. 무슨 일이시죠? 상담 예약 취소하고, 한동안 연락도 안 하셨잖아요. 진료 기록이요? 폐기요? 첫 상담 때 드린 동의서에 모두 서명하셨잖아요. 진료 기록 폐기는 1년 뒤에 가능하고, 아직 8개월 차입니다. 아시다시피 내담자님 테이프는 진열장 하단에 있어요. 위 칸부터 순서대로 폐기된다는 거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불안증세로 오신 것 같은데 우선 이곳에 앉아 계세요. 따뜻한 차를 드릴게요. 선생님, 따뜻한 차 아니 25번 내담자 동의서 찾아주세요. 보여드릴게요. 보관 중인 녹음테이프를 가져가려면 이 약조에 맞게 이행하셔야 해요. 선생님, 뭐 하세요! 빨리 찾아주세요. 아니다. 나오세요. 제가 찾을게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안에 계신 내담자분께 지금 상황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오늘 처음 오셨는데 이게 무슨 민폐인지. 어서요. 그리고 25번 내담자분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여기 계신 분들께 피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아씨 동의서는 어딨는 거야 대체. 안에 계신 내담자분도, 지금 옆에서 몇십 분째 기다리고 계시..네? 네!! 몇십 분째!! 기다리고 계시는 분도 있는데 갑자기 들어오셔서 난동을 부리시면 안 되죠. 오늘은 시간이 없고 내일 다시 오세요. 이야기를 들어야지 안 되겠어요. 동의서는 못 찾겠네요. 이 선생님은 정리를 어떻게 했길래…날짜별로 정리해놓으라니까 작년 10월부터 뒤죽박죽이면 어쩌라는 거에요. 선생님, 말씀드렸어요? 여기 두 분 좀 살펴주세요. 그리고 제가 몇 번이나 이야기합니까. 날짜별로 동의서 정리해달라고요. 엉켜있으면 급하게 찾아야 할 때 바로 못 찾잖아요. 오늘까지 동의서 정리 다 해놓으세요.

달칵.

죄송해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미숙한 모습을 보인 것 같네요. 죄송해요. 오늘 상담요? 상담을 진행하는 데 무리는 없겠지만 내담자분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다른 날로 예약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첫 상담 비용은 죄송해서 못 받겠어요. 저와 직접 날짜를 정하시죠. 원래 예약 날짜나 시간은 선생님과 하셔야 해요. 혹시 다음 상담 때를 대비해서 알려드릴게요. 저와 상담이 끝나고 나가시면 선생님께서 다음 상담 여부와 예약 날짜와 시간을 말씀해주실 거예요. 제가 이 자리에서 다음 상담을 권유해도 내담자분께서 큰 필요를 못 느끼신다면 나가서 선생님께 상담을 잠시 중단하겠다 혹은 종료하겠다고 말씀하시면 돼요. 아 물론 무조건 다 받아들이진 않아요. 제가 판단했을 때 몇 차례 상담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다시 연락 드립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상담을 더 받고 싶어하셔도 제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예약을 받지않습니다. 오늘은 상담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분위기인 것 같은데 오늘도 괜찮으시겠어요? 예. 다음 주 평일이 괜찮으시면 그렇게 하시죠. 오전, 오후 모두 괜찮지만, 참고로 저의 상태는 점심시간 이후가 가장 맑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예. 그럼 13일 2시로 하죠. 저는 내담자의 성함을 부르지 않습니다. 내담자. 이 이름이 이곳에서만큼은 내담자의 본명이자, 저에게 가장 편안한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상담자의 편안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과하는 거죠. 상담자의 심리 상태도 편해야 내담자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내담자분께서 방문하기 전까지 이례적으로 평온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만남이, 예약이 참으로 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긴장을 늦춘 탓이네요. 그러면 13일 오후 2시 이곳에서 다시 뵙죠. 나가실 때 선생님께 따로 말씀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내담자분은 특별히 제가 직접 일정을 맡아서 조율하고, 직접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다리시고, 부족한 설명 들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상담 날짜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조치를 해놓겠습니다. 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가시죠. 그럼.

달칵.

아뇨. 선생님 이분은 제가 직접 다음 상담 시간과 날짜 잡았습니다. 따로 확인 안 하셔도 됩니다. 예 그럼 들어가 보세요. 조심히 가세요. 13일에 뵙겠습니다. 예 들어가세요. 두 분 어디 가셨어요? 25번과 31번 내담자 두 분이요. 25번 내담자분이 들어오시면 제 방으로 먼저 안내해주세요. 아뇨. 25번이 더 심각해요. 31번이 먼저 오시면 상담료 먼저 이야기하고, 3회차까지 무료로 진행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오늘 기다린 시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보이면 안 될 모습을 보였네요. 어쨌든 25번 먼저 들어오게 해주세요. 오늘 저 기록을 없애버리든지 해야겠어요. 아 그리고 25번 진료 기록 내용 서류로 정리해 놓은 것 주세요. 설마 그것도 못 찾게 해놓으신 건 아니죠? 다행이네요. 주세요. 아 동의서 다 정리하셨어요?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으면 다 정리해 주세요. 다른 업무 안 하셔도 되니까 동의서 정리가 우선이에요.

달칵.

25번… 25번… 5회 차 상담이었으니까 테이프도 5개… 전화번호는 뭐지… 어떻게 안 거야… 저 선생이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그럼 설마 미국으로 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25번… 이상했어. 처음 상담 온 날부터. 고라니 새끼 같은 웃음소리, 처음 보는 불안한 눈동자. 녹음테이프 다 폐기하고, 상담 일지까지 보는 앞에서 파쇄기에 넣으면 뭐 어쩌겠어. 그래. 그냥 보내. 욕심 갖지 말고. 내담자 한 명 보내는 거 뭐 어렵다고.

딩동.

예. 들어오세요. 앉으세요. 선생님 다음 내담자분 밖에 계시죠? 예.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부탁드려요. 나가보세요. 자, 보이시죠. 총 다섯 개의 녹음테이프가 내담자분의 기록 전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할 겁니다. 그 전에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당장 테이프를 내놓으라 요구하시는지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동의서에 서명하셨고, 서로가 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은 모든 것이 파기된 후에 저에게 그리고 우리 상담소에 무엇을 요청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말씀하시죠. 다시 상담을 받고 싶으시다고요? 아무 말 없이 예약도 취소하고, 전화도 안 받으셔서 어디 멀리 가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시 상담을 받고 싶으시다면 어떤 계기나 그사이 어떤 사건이 있으셨던 건가요? 아 아니죠. 우선 다시 상담을 받기로 하셨으니 예약 날짜를 잡아드릴게요. 정식 상담 시간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나가셔서 선생님과 예약 날짜를 잡으시고, 그날 다시 방문해주세요.


2
자, 모두 내려오세요. 우리가 무대에서 봤듯이 내담자의 변주는 역동적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죠. 먼저 25번 내담자 역할을 맡은 학생에게 박수가 필요합니다. 상담자가 당황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반대로 31번 내담자는 무엇을 했죠? 존재감 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본인의 상담 시간은 앞 사람과 25번 내담자 때문에 모두 날아가버렸는데 가만히 있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야죠.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상담자 역할을 맡은 학생은 방어를 잘했지만, 순간순간 진심으로 나오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에게 고함을 치거나 협박조로 이야기하는 건 옳지 못하죠. 아예 죽여버린다면 모를까. 자, 녹음에 집착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녹음기, 테이프, 진열장 한 번에 불태워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런 거죠.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데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반대하는 겁니다. 칫솔을 들고 치약을 짜야 하는데 엉뚱한 샴푸를 짠다거나 신호등이 바로 내 앞에서 바뀐다거나 버스 기사가 나를 보고도 지나쳐버린다거나 모든 게 나를 반대하는 거죠. 다음 팀은 이런 점을 유의해서 무대를 준비하세요. 25번을 맡는 학생은 좀 더 강한 변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선생님을 맡는 학생도 상담자를 끊임없이 괴롭혀야 합니다. 꼬인 실뭉치를 아예 짓밟는 거예요. 상담자는 누구보다 괴롭겠지만,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담자가 절대 녹음기의 버튼을 누를 수 없게 만들어야죠.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상담자입니다. 다음 팀 무대로 올라오세요. 그럼 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